세상사는 이야기

낯설게 하기

甘冥堂 2024. 1. 31. 16:19

낯설게하기란 문학용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이란 무엇인가 설명하기위해 도입한 개념으로,
문학은 낯익은 것(언어,감정,풍경, 사고 등)을 새삼스럽게 만든다는 얘기다.

예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귀 묘사 부분이다.
여주인공 안나가 기차역에 남편을 마중나갔다가, 남편이 기차에서 내린 순간 그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이 남편의 귀. 그런데 그 귀가 영 낯설다.
그녀는 생각한다. '아니, 저 사람 귀가 왜 저런 거야?'

안나 키레리나의 경우, 남편 귀의 낯섦은 부부관계의 낯섦을 의미한다.
여행길에 마주친 멋진 장교와 열정의 싹을 틔운 그녀에게 남편은 육체적으로 이미 타인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았던 터, 혐오스러운 귀는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문학을 읽고 공부하는 일에 효용성이 있다면, 다름아닌 '낯설게 하기'의  효력 아닐까 싶다.
작가는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보여주며, 또 항상 봐온 것도 달리 보고 보여준다. 이른바 문학의 기법이다.

때론 자신의 일상까지도 낯설게 느껴지고, 익숙한 나머지 눈길조차 주지 않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기도 하고, 자동화된 시선을 거둔 채 멈춰 서기도 한다.
삶의 관성이나 일반론 같은 것에 거리를 두며 딴곳을 바라보려고 한다.
낯설게 본다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본다는 것이다.

최근 등장한 서울 브랜드 'Seoul, My Soul' 고유명사 '서울'과 영어 단어 '소울(마음, 영혼, 생명)이 서로 메아리친다는 사실을 이전엔 인식 못 했다. 끄덕이게 된다.
덕분에 서울의 의미를 찾았다.

말장난이 다는 아니다.
유사기법의 유머, 조롱, 폭언 등 저질 말장난은 지루함만 유발하며 시적언어 유희의 격을 떨어 뜨린다. 억지스럽고 기계적이고 그 너머의 메시지가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자작나무숲에서 발췌)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戀歌 11  (0) 2024.02.01
어떤 글들  (0) 2024.02.01
獨笑  (2) 2024.01.31
라면  (2) 2024.01.31
절실 또는 치열  (0) 202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