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느 노인의 사랑

甘冥堂 2024. 6. 27. 09:06

-노인의 기막힌 사랑 -

내리는 비도 피하고, 구두도 손볼 겸
한 평 남짓한 구두 수선방에 들어갔다.

문을 열자 나이 70 넘은 분이 양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으로 다가와
나의 흙 묻은 구두를 손 보기 시작하였다.

불구의 어르신 앞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내 행동이 무례한 것 같아 자세를 바로 하면서
"어르신! 힘들게 번돈 어디에 쓰시나요?"

공손히 여쭙자 가슴에 응어리진 지난날의 긴 이야길 나에게 들려주셨다.

힘들게 번 그 돈을 한 달에 한번 보내주는 곳은
부모님도 자식도, 형제도 아닌,
신분을 밝히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보내 주는 곳에 대한 사연이었다.

"대대로 물려 온 지긋지긋한 가난. 한 마지기 땅으로 9 식구가 사는 집의 장남인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들의 손을 뿌리치고
자유 평화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월남전에 지원해 갔어.
하지만 더 가슴 아픈 건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가는 것이었어..."

"울며 매달리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약속했었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오겠노라고...>

그녀가 말하더군
<살아만 오라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기다리겠다고>

같이 마을 뒷동산에 올랐는 데,
작은 몸을 떨며 나를 붙잡고 얼마나 울어 대던지.
그리곤 이삼일 후 해병대에 지원해서 월남 파병이 되었지"

"그 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
살기 위하여 싸웠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죽지 말아야 했지.
수 없는 전투를 힘들 게 하면서 편지가 왕래하던 다음 해,
귀국을 앞둔 겨울 마지막 전투에서 벙커로 적의 수류탄이 떨어진 거야"

"생각할 여지가 없었어. 떨어진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동료들의 목숨은 구했지.
눈을 떠보니 하체가 없는 불구자가 된 거야. 통합병원에서 겨우 살아는 났건만,

울면서 밤을 지새우며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그 몸으론 사랑하는 여자 앞에 나설 수가 없음을 알았던 거야"

"고민 끝에 세상에서 제일 슬픈 말을 전해야 했어,
<그 여자에게 차라리 내가 전사했다고...>
난 가슴이 찢어져 내리는 것 같아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했지.

그 후 불구자로 제대 한 뒤 3년쯤 후에 상처가 아물게 되자, 난 그 여자가 보고 싶어졌어.
그때쯤 그 여자가 결혼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지."

"잘 살아주길 기원하며 숨어서라도 딱 한 번 만이라도 보려고...
그날 기적처럼 어느 간이역에서 그녀를 만났어.
둘이는 벙어리가 되어 서로 멍청히 보고만 있었지.

그러고 나서 그 여자 남편을 보는 순간 난 더 기가 막혔지,
그 남편은 나보다도 더한 양손 양다리가 모두 없는 불구자였어."

"그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인 나를 월남 전에서 잃었다 생각하고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그 남자와 결혼한 것이었어.

그 얘길 듣고 난 후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그 남자를 버리라 할 수도 없었고, 내게  돌아와 달라 할 수도 없었어."

"그 여자는 하체가 없는 내 앞에 엎드려 한참을 울더군.....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해가 질 때 떠나가면서 나에게 말하더군.
<우리 둘이 약속한 그 뒷동산의 꽃을 자기 눈물로 키웠다>고
<하지만 살아줘서 고맙다> 고.
그리곤 손 흔들며 떠나버렸어."


"그 후로 난 지금까지 웃으며 살아 본 적이 없어.
그저 그녀와 함께했던 그 동산에 올라
나 자신을 책망하며 살아왔었지.

나의 용서를 빌며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 얼마 안 되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 주려고
이렇게 번 돈을 그 여자한테 매월마다 익명으로 보내고 있지..."

노인은 그렇게 말을 이어 가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하늘을 보며
눈물을 닦아내고 계셨습니다.

구두 수선방을 나서며 '노인의 기막힌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분은 가슴에 새긴 그 여자를  기리며 묵묵히 신발을 닦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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