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間一蝨懸 (창간일슬현) 창가에 이[蝨] 하나를 달아 놓고서
目定車輪大 (목정차륜대) 집중하면 수레바퀴처럼 커 보인다지
自我得此石 (자아득차석) 내가 이 돌멩이를 얻고 난 뒤로는
不向花山坐 (불향화산좌) 화산 쪽을 향해 앉지를 않는다네
- 최립(崔岦, 1539~1612), 『간이집(簡易集)』 권6, 초미록(焦眉錄) 중 <괴석(怪石)>
최립은 젊은 시절 황해도 일대를 다니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아마도 그 무렵 조그만 돌멩이 하나를 주워 집에 가져왔고,
창가에 두고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이럴 수가,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담겨 있음을 발견했던가 보다.
돌을 손에 쥐고 굴리며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는 『열자』에 등장하는 옛이야기를 떠올린다.
신궁(神弓)으로 이름난 비위 (飛衛)에게서 활을 배운 기창(紀昌)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창가에 벌레 한 마리를 매달아 놓고 매일같이 그걸 들여다보았다.
세월이 흐르자 그 벌레는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수레바퀴처럼 큼직하게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집중의 힘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최립이 이 돌을 주운 화산(花山)은 황해도 문화현(文化縣)의 명산이다.
언젠가는 다시 가야지 하고 생각만 하던 차였는데,
지금 그는 이 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아, 이 괴이한 돌과 그 안의 세계만으로 족하다!
산을 어찌 가거나 바라볼 필요가 있으리오.’
그는 이 감흥을 스무 자의 오언절구 한 수에 담아냈다.
세상에는 장대함에 감탄하길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흔히 작고 미세한 것을 하찮게 여기며, 그것을 파고드는 사람을 비웃곤 한다.
그러나 정말 그게 옳은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깊이, 또 오래도록 바라보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사실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 안에
그 주인의 살아생전을 알려주는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지 않은가?
이처럼 ‘작은 것’의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고 더욱 장엄하다.
최립은 ‘작은 것’이 자신에게 펼쳐 보인 그 웅대함을 단지 스무 자로 유감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그 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이다.
사실 그는 시인이라기보다 문장가로 더 이름 높았던 인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거의 도맡았고,
직접 사신으로 명에 가서도 그곳의 문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시를 몇 차례 반복해 읽고 나니,
허균(許筠, 1569~1618)이 왜 최립을 일러 “문장이 시를 가렸다”고 평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는데, 아마 이는 나만의 감상은 아닐 터이다.
『광해군일기』에서 최립의 죽음을 기록한 사관(史官)도 이 <괴석>을 특별히 언급하며
"큰 운치가 이와 같았다"고 평하였으니 말이다.
글쓴이 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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