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주련(柱聯) 문구
도림사(동락산) 動樂山 道林寺 [전남,곡성] *제19교구 화엄사 말사
[청류동(淸流洞)계곡]
청류동 구곡 (淸流洞九曲)
천간지비(天?地秘)의 박혜범님에 의하면
'하정 조병순(荷亭 曺秉順 1876~1921)선생이 구곡(九曲)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 일곡(一曲) 쇄연문(?煙門)
2. 이곡(二曲) 무태동천(無太洞天)
3. 삼곡(三曲) 대천벽(戴天壁)
4. 사곡(四曲) 단심대(丹心戴)
5. 오곡(五曲) 요요대(樂樂臺)
6. 육곡(六曲) 대은병(大隱屛)
7. 칠곡(七曲) 모원대(暮遠臺)
8. 팔곡(八曲) 해동무이(海東武夷)
9. 구곡(九曲) 소도원(小桃源)
제일 먼저 이곡(二曲)을 만난다.
그렇다면 일곡(一曲)은 더 아래에 있을 것.
구한말 당시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활동하다 1921년 7월 15일 밤 곡성경찰서에 끌려가
고문 살해되었던 의병장 '하정 조병순(荷亭 曺秉順)'선생과
'춘기 정순태(春沂 丁舜泰)선생'이 2곡(二曲) 물가 암반에
'盈科後進(영과후진) 放乎四海(방호사해)' 라 새겼다.
선생 두 분이 이 글을 여기에 새긴 것은,
‘도덕적으로 수양이 된 군자는 주위의 환경과 유혹에 쉽게 동요되지 않으며
나갈 바를 분명히 한다.’는 뜻으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분히 만반의 준비를 하여
적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근본을 이어가는 선비의 자세를 밝힌 것이다.
'兩崖交翠陰(양애교취음)
一水自淸瀉(일수자청사)
俯仰契幽情(부앙계유정)
神襟頓飄漉(신금돈표록)'라는 오언절구(五言絶句)를 만난다.
회암(晦菴) 주부자(朱夫子)詩를 후학(後學) 조병흠(曺秉欽) 정봉태(丁鳳泰)
근송각(謹誦刻 삼가 외워 새긴다.)
* 조병흠은 조병순의 동생이다.
'三曲(삼곡)에는
神山九折溪(신산구절계) 沿沂此中半(연기차중반)'라는
주부자시를 후학 정순태,조병순 근송각(謹誦刻 빙청옥계(氷淸玉溪) 각자에도
'춘기(春沂)선생'과 '하정(荷亭)선생'이 새겨져 있다
도림사 간판아래
청류수석동악풍경(淸流水石動樂風景) 좌측으로 춘화화음희제(春和華陰戱題)
제일 우측의 숭정기원후사신ㅇㅇ(崇禎紀元後四辛ㅇㅇ)
*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의종(毅宗)의 연호.
1628년부터 1644년까지 사용되었다.
'奇蘆沙 松沙 兩先生杖屨處(기로사 송사 양선생 장구처)'라는 작은 글씨아래...
'서산강론(西山講論)'이라 큰 글씨로 새기고 아래 아홉 명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언뜻 보기에는 강론을 한 사람들의 호와 이름을 새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구한말에 나라를 찾으려는 의지를 새긴 비밀서약이라고 한다.
오재 정봉태(梧齋 丁鳳泰),수태(秀泰),해태(海泰)는 형제들 같고,
하정 조병순(荷亭 曺秉順)과 그의 아우인 병흠(秉欽)도 형제간이다
丹心客上丹心臺 단심(丹心)을 품은 나그네 단심대에 올랐네.
縱有丹心有孰知 단심이 있다한들 누구에게 이 마음을 줄 것인가
莫道丹心知者少 단심을 아는 이 적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丹心只恐死如灰 단심이 죽어 재가 될까 다만 두려울 뿐이라네.
'우구산시(右臼山詩)' - 구산은 간재 전우(艮齋 田愚/1841-1922)선생의 별호이며,
구한말 애국지사로 나라 잃은 설움을 시로 읊은 것을 새겨놓은 거라고 한다.
처음 만나는 1철교를 건너면 좌측 계곡 암반위에...
비교적 선명한 각자가 나타난다.
제일 위에 '중류지주백세청풍(中流砥柱百世淸風)' 이라 새겨져 있다.
중류지주(中流砥柱)는 중국 하남성 협현 황하강 중류에 위치한
기둥과 같이 생긴 지주산(砥柱山)을 지칭하는 것으로
탁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개를 말한다.
서애 유성룡의 형인 겸암 유운룡(謙庵 柳雲龍 )이
'야은 길재'선생의 묘 동쪽 기슭에 세운 경북 구미의 오산서원(吳山書院)에도
'지주중류비'가 세워져 있다.
백세청풍(百世淸風)은 백대에 부는 맑은 바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백세(百世)는 ‘오랜 세월’ 또는 ‘영원’을 뜻하고,
청풍(淸風)은 매섭도록 맑고 높은 군자의 절개나 덕을 비유한다.
따라서 백세청풍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를 의미하며
충남 금산 청풍사(淸風祠)에도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碑)가 세워져 있다.
쾌사창애일도천 (快瀉蒼崖一道泉) 푸른 절벽 사이를 쏟아져 내리는 한줄기 맑은 물은
백룡비하을람천 (白龍飛下鬱濫天) 백룡이 하늘에서 숲으로 날아 내리는듯 하네
공산유차진기관 (空山有此眞奇觀) 인적없는 산중에서 이런 절경을 보고 있으려니
의장래간사름연 (倚杖來看思澟然) 지팡이 의지해 와 둘러본 마음까지 젊어지누나
회암주부자시후학정순태조병순송각(晦菴朱夫子詩後學丁舜泰曺秉順誦刻)
주부자(朱夫子)의 시를 삼가 후학 정순태 조병순이 노래하고 새겼다
제일 왼쪽 끄트머리에 황매천 진사 장구처(黃梅泉 進士 杖履處)라고 새겨져 있다.
구한말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쓴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선생은
광양시 봉강면에서 출생, 자는 운경, 본관은 장수, 무민공 황진의 후손이다.
매천야록’은 1864년부터 1910년까지 47년간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록해 유명하다.
l910년 8월22일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천은 유서와 절명시(絶命詩)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이씨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명분은 없다.
다만 500년 동안 선비를 양성했던 나라에 목숨을 바친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스스로 떳떳한 양심과 평소 독서한 바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죽음을 택하는 편이 옳다.
너희들은 지나치게 애통해 하지 마라."
칠언절구의 4수, 지조와 선비다움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게 하는
매천의 절명시(絶命詩) 중 3수를 읽어본다.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들도 슬피 울고 바다 또한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이 나라가 이미 물속으로 가라앉네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의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를 되새기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어렵구나, 지식인의 사람다움을 지키기가.
우죽(友竹), 옥강(玉岡)정일흥, 두후(斗後)조상묵 등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마른 계곡이 끝나면서 길상암지가 나온다.
역시 확인하지 못한 '제시인간별유천(除是人間別有天)'
이 글귀는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주자(朱子) 의 구곡(九曲)에서 따왔다.
九曲將窮眼豁然 (구곡장궁안활연) 아홉 굽이 장차 다해 눈이 훤히 열리니
桑麻雨露見平川 (상마우로견평천) 뽕나무 삼나무 비이슬이 평천을 보누나
漁郞更覓桃源路 (어랑갱멱도원로) 어랑이 다시 무릉도원 찾지만은
除是人間別有天 (제시인간별유천) 이게 바로 인간 세상 천하 절승 별천지네
삼남제일 암반계류 청류동 계곡 풍치 일품인 동악산 (위치 : 곡성읍~입면, 높이 : 735m).
우선 動樂山을 동락산 이라 읽지 않고, 동악산 이라 읽는 까닭부터 밝혀야
이 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대개 樂은 뒤에 딸려 나올 때 락으로 읽힌다.
도락산(道樂山)이니 진락산(眞樂山)이니 하는 것이 그런 경우인데,
이 경우는 즐거울 락의 경우다.
그러나 동악산의 경우에는 풍류 악으로 읽어야 한다.
천상의 노래, 즉 음악이 울린다(동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래는 이렇다.
이 산의 개산조인 원효대사가 성출봉(聖出峰 형제봉 동봉으로 동악산 최고봉) 아래에
길상암을 짓고 원효골(청류동 남쪽 골짜기)에서 도를 베풀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성출봉과 16아라한이 그를 굽어보는지라 깨어나 즉시 성출봉에 올라가 보았더니 1척 남짓한 아라한 석상들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원효가 열일곱 차례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아라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셔 놓으니
육시(六時) - 불교에서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독경의 시각으로 신조, 일중, 일몰, 초야, 중야, 후야- 만 되면 천상에서 음악이 들려 온 산에 퍼졌다 한다.
도림사 응진전에 봉안된 아라한상들이 당시의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마을 주민들은 곡성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탄생하게 되면
이 산에서 노래가 울려 펴졌다고도 한다.
남원 실상사 약사전의 약사여래상처럼 나라에 불길한 징후가 나타나면 땀을 흘리는 흉조를
나타내는 불상이 있는가 하면 동악산처럼 길조를 알리는 산도 있기 마련이다.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크게 두 산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다.
각 산덩어리에는 비슷한 높이의 정상이 있는데 이 두 산덩어리를 가르는 것이 배넘이재이고, 남봉(형제봉·동봉과 서봉으로 형성돼 북봉에 동악산, 남봉에 형제봉 이라 표기해 놓고 있지만 최고봉은 형제봉이 된다.
산이름의 유래가 성출봉(형제봉 동봉)에서 유래됐다는 것과 주요 등산로가 형제봉을 중심으로 더 잘 나 있다는 점은 형제봉이 동악산의 주봉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산을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부르는 까닭은 산들목에 있는 도림사로 들어서면서 알게
된다.
그다지 깊지 않은 계곡인데도, 암반이 펼쳐지는 시원스런 품세는
삼남에서 제일이라는 과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길이도 200여m에 달한다.
청류동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의 암반에는 새긴 글자도 무수히 널려 있다.
누군가 이 암반계류의 절경마다 一曲(일곡) 二曲(이곡)하며 구곡까지 새겨 놓았는데,
더러는 깨지고 더러는 도로확장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도림사 입구 상가 주차장 부근에서 2곡, 4곡, 5곡 등의 곡이름과
淸流洞(청류동), 丹心臺(단심대), 樂樂臺(낙락대) 등의 지명,
樂山玩草 吟風弄月(요산완초 음풍농월)이니
淸流水石 動樂風景(청류수석 동악풍경)이니 하는 싯구,
그리고 아무개 장구처(杖 處)라 하며 자기 이름이나 호를 새긴 크고 작은 각자들을
마치 설악산 비선대나 두타산 무릉계에서 처럼 발견할 수 있다.
도림사 일대가 관광지로 지정된 동악산은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벚꽃은 쌍계사보다 약 1주일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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