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74)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
그는 2011년 동양인 여성 최초로 독일에서 괴테 금메달을 받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괴테 석학'이다.
"세상에서 한 가지 야무지게 해낸 일"인 평생 읽고 배운 것을 나누고자 그가
경기 여주시에 마련한 여백서원을 지난 18일 찾았다.
1974년 '파우스트'를 처음 읽으면서 괴테와 연을 맺게 된다.
독서에 얽힌 아주 특별한 경험도 이때 했다.
"괴테를 읽는데 내가 중학교 때 읽었던 시가 거기 있는 거예요.
제목도 없는 시인데 너무 신기했죠. 이 세상에 괴테라는 사람, 독문학이라는 게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을 때 읽은 글인데. 왜 이 시가 나한테 여태껏 남아 있었을까,
하는 물음을 물경 10년을 갖고 있었죠."
답을 찾았다. "사람들은 흔히 재주로 글을 쓰는 줄 아는데 마음이 전해주는 게 글이거든요.
작가가 정말로 힘을 줘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건 반드시 전해져요.
화려한 미문이라서가 아니고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남죠."
그래서 그가 당부하는 게 요약본으로 고전을 읽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걸러져서 와버리면" 나한테 와닿을 무언가를 놓칠 수 있다는 것.
"'파우스트' 함께 읽으면 어렵지 않아요"
그의 숙원인 괴테 전집의 1, 2권으로 2019년 출간된 '파우스트'(길)는
1,512쪽 분량의 벽돌책이다.
괴테의 역작이자 어렵기로도 유명한 책.
그는 "괴테가 60년을 쓴 글인데 불과 서너 시간, 하루이틀 읽어보고
어렵다고 못 읽겠다 하는 건 좋지 않은 태도"라며
"몇 구절만 건져가도 족하니 서둘지 마라"고 했다.
그 역시 '파우스트'를 40년 동안 읽고, 5년간 번역했다.
1만2,111행에 달하는 '파우스트'는
"운율이 기가 막힌 시면서 드라마인 연극 대본"이다.
예쁜 노트를 한 권 사는 것도 그가 권하는 팁이다.
노트를 쫙 펼쳐 한쪽에 좋았던 구절을 띄엄띄엄 적는다.
다른 쪽은 시간을 두고 소감을 적거나 독일어 원문을 옮겨 적는 식으로 활용한다.
그는 재차 말했다. "파우스트 읽어보면 굉장히 재밌습니다."
조금은 쓸모없어 보이는 문학을 왜 이렇게까지 읽어야 할까.
"먹고만 살겠다고 하면 책은 안 읽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우리는 같이 살아요.
남의 삶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죠. 나는 한 인생밖에 못 살잖아요.
문학은 내가 살지 못한 다른 삶,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잖아요.
사실은 삶에 무척 많은 도움을 주는 게 문학인 것이죠."
"살아 있다면, 계속 공부해야"
그는 살아 있는 한 계속 읽을 생각이다.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배울 생각이 없다는 것은,
모질게 말하자면 살 생각이 별로 없는 것 아닌가 싶어요.
살아 있다면,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공부란 물론 책 보는 것뿐일 리는 없고 오히려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이겠지요."
그가 괴테 마을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그렇게 큰 사람은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가"를
괴테를 통해 본보이기 위해서다.
그가 볼 때 "괴테는 자기를 굉장히 잘 키우는 사람"이다.
"배움은 꼭 나눠야 합니다."
여백서원과 괴테 마을을 괴테 연구의 중심지, 고급한 교육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도 있다.
"철없을 때는 내가 고생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보니까
세상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 많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은 힘이 없고요. 가진 게 별로 없어서.
나이 든 사람은 돈은 없을지 몰라도 경험이 많잖아요.
여기 길 하나라도 내가 반듯하게 닦으려고 합니다."
(한국일보. 권영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