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던 감정도 어느 순간을 넘기면 가라앉고 잠잠해 진다.
그 감정의 응어리가 하루를 넘길 때도 있고, 2~3일 걸릴 때도 있다. 심지어는 몇 달 동안 마음을 뒤 흔들어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오늘의 어떤 감정은 하루밤이 지나면 스르르 정리되곤 한다. 어제 한 일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진하기도 하다.
어제 쓴 글들을 오늘 다시 읽어 보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글을 쓸 당시엔 그것이 최선이고 나도 모르는 어떤 기운이 붓끝을 그리 달리게 하는데, 그 순간을 뭐라 억제하기 어렵다. 붓끝이 가는데로 내 맡겨 끝내고 나면 뭔가 응어리졌던 것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글쓰는 이들의 심정이나 동력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카페에 올렸던 글을 지워버렸다. 어느날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밤새 지워버린적도 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들을 썼는지... 얼마가 지난후 다시 읽어보면 웃기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바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우고 나면 너무 아쉽다. 그때 그 마음은 그랬었는데, 그걸 왜 지워?
내 인생, 내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맘에 안든다고 없애버릴 수야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순수한 감성도 이윽고 남을 의식하는 순간 변질된다.
이성이란 스스로에게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대를 의식했을 때 생기는 어떤 자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이 이성이라면, 이는 나 아닌 남이 있어야 생기는 감정이 아닌가. 일종의 상대적 감정이 아닐까? 흔히 말하듯 뜨거운 감성, 차가운 이성이라던가. 또는 뜨거운 가슴, 차거운 머리 라고 표현하듯 상대적인 게 아닌가 생각 된다.
무언가를 끄적일 때의 감성은 자기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하며 순수한가?
그 순간만큼은 글과 자신이 일체되는 무아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글쓰기를 끝내고, 다시 읽어 보는 순간, 나의 순수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다만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내 마음속에 나 아닌 타자가 자리 잡는 순간, 순수함은 사라지고, 비교의 대상이 될 내 글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 나의 감성이 아닌 나의 이성이 그건 안돼,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그건 유치해..하고 간섭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처음의 감성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고치고, 다듬고. 그러다가 확 지워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순수함은 어디로 간 것인가? 소위 이성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이다. 마음은 우울해지고 의욕이 사라진다.
오늘 아침, 며칠 전 동호인 카페에 올린 글이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삭제를 하고나니, 시원치 않은 글이지만 못난 제 새끼를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조금 언짢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니, 신체 메카니즘이 이런 감성이나 이성을 자동조절 해주는 것 같다. 그래야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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