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024. 賊退示官吏 / 元結

甘冥堂 2022. 9. 14. 18:01

024. 賊退示官吏 / 元結

       도적이 물러난 뒤 관리에게 보인다.

 

昔年逢太平 (석년봉태평) 옛날 태평성대 만났을 때에

山林二十年 (산림이십년) 산 속에서 이십년을 보냈다.

泉源在庭户 (천원재정호) 샘물은 마당에서 샘솟았고

洞壑當門前 (동학당문전) 문 앞은 동굴과 산 골짜기였다.

井稅有常期 (정세유상기) 세금은 기일이 정해져 있었고

日晏猶得眠 (일안유득면) 저녁이면 편안하게 잠을 잤다.

忽然遭世變 (홀연조세변) 갑자기 세상이 변란을 당해

數嵗親戎旃 (수세친융전) 몇 해를 몸소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今來典斯郡 (금래전사군) 지금 내가 이 고을을 관장하게 되었는데

山夷紛紛然 (산이분분연) 산속 오랑캐가 어지럽히고 있다.

城小賊不屠 (성소적불도) 성이 작아 도적들도 살육하지 않은 것은

人貧傷可憐 (인빈상가련) 백성들이 가난하여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是以陷鄰境 (시이함린경) 이 때문에 이웃 마을은 함락됐지만,

此州獨見全 (차주독견전) 이 고을만 온전함을 얻었다.

使臣將王命 (사신장왕명) 관리는 왕명을 받들었지만

豈不如賊焉 (기불여적언) 어찌 도적만도 못한 것인가?

今彼徴斂者 (금피징렴자) 지금 저 세금을 거두는 자는

迫之如火煎 (박지여화전) 다그치기를 불에 지지는 것 같이 한다.

誰能絶人命 (수능절인명) 누가 사람의 생명을 끊고도

以作時世賢 (이작시세현) 한 시대의 어진 관리가 될 수 있으랴?

思欲委符節 (사욕위부절) 벼슬을 내버리고

引竿自刺船 (인간자자선) 장대 끌고 삿대질하여

將家就魚麥 (장가휘어맥) 가족 데리고 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歸老江海邊 (귀노강해변) 강과 해변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다.

 

 

世變(세변)안사의 난. 日晏(일안)해가 저물다.

遭世變(조세변)변을 당하다. 戎旃(융전)병기와 깃발.

親戎旃(친융전)몸소 전쟁에 참여하다.

典斯郡(전사군)道州 자사에 임명됨을 지칭한다.

鄰境(인경)이웃한 고을. 즉 영주와 소주를 가리킨다. 見全(견전)보전되다.

迫之(박지)핍박하고 다그치다. ''道州의 백성을 가리킨다.

 

時世賢(시세현)당시의 현능한 관리.

符節(부절)조정의 관리에게 내린 임명장을 말한다.

刺船(자선)배를 젓다. 將家(장가)온 가족을 데리고.

就魚麥(취어맥)고기를 잡고 보리농사를 짓는다. 고향에 은거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시의 서문은 이렇다.

계묘년에 西原의 도적들이 道州에 들어와 불태우고 살육하여 거의 남은 것이 없는 지경을 만들어 놓고 떠나갔다.

이듬해에 도적들이 또 永州를 공격하고 韶州를 유린했는데 이 道州의 변경만은 침범하지 않고 물러났으나,

어찌 이 고을의 힘이 도적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는가? 아마 도적들이 측은해하고 불쌍히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도적들도 이러하거늘 세금 징수관들은 어찌하여 차마 모질게도 세금을 거두어들인단 말인가!

이에 시를 한 편 지어 관리들에게 보인다.

 

이 시는 통치자의 전횡 폭정을 질책하는 시다. 시의 서문은 이 시를 쓴 역사 배경과,

관리가 인민의 死活을 돌보지 않는 것을 오랑캐 도적들과 비교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작가 자신의 심지를 그리고 있다. 소위 충신 현신도 바라지 않고,

차라리 강호로 은둔하여 자신을 깨끗이 하고 싶다.

또한 흉악한 관리를 도와 백성을 구덩이에 넣어 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 그런 심정을 그리고 있다.

 

[작자] 원결(719~772)은 지금의 하남 노산 사람으로, 안사의 난 중에 병조 참군과 도절도 참모로 史思明을 격퇴하였다.

(안사의 난 주모자인 안록산과 사사명의 첫 글자를 따 安史이라고 한다).

후에 道州 자사로 임명 되었다.

원결은 盛唐의 저명한 문학가였다.

그의 문장은 "필력이 웅건하고 의기가 超拔(초발)하였다"歐陽脩(구양수)가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