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 언제 들어도 기운이 나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벗’보다 ‘친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만,
벗이든 친구든 들어서 기운이 나는 이른바 ‘힐링’의 효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친구들과 만나 일상에서 지친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하니
그 ‘힐링’이 그저 말 뿐인 것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전혀 부담이 없는 사람을 좋은 친구로 여기는데
옛사람들은 어떠하였는지 궁금해집니다.
女於明鏡中 照面整不整
士欲寡過者 爭友是明鏡
(여어명경중 조면정부정
사욕과과자 쟁우시명경 )
여인네들은 깨끗한 거울을 통해서
용모가 단정(端整)한지 아닌지 비춰본다네.
허물을 줄이고자 하는 선비에게는
바른 말을 해주는 벗이 깨끗한 거울이라네.
첫머리에 인용된 글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살았던 문인 황종해의 「예시(禮詩)」라는 작품의
여덟 번째 시의 일부입니다.
우선 작가 소개를 하면, 황종해는 자가 대진(大進), 호는 후천(朽淺)이고
당대 예학(禮學)의 대가들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였습니다.
예학의 대가들에게 수업하였다고 하니 「예시」라는 작품 제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예시」는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는 시입니다.
부모님을 섬길 때[事親], 자녀들을 가르칠 때[敎子], 군신 관계에서[君臣],
부부 사이에서[夫婦], 형제 사이에서[兄弟], 스승을 섬길 때[事師], 어른과 어린이 사이[長幼],
벗들과의 관계[朋友] 총 8가지 인륜(人倫)에,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이라는 효제(孝悌)를 강조한 총론(總論)을 더하여 모두 9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벗들과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것인지 살펴봅시다.
여성들이 용모를 가꾸고 옷매무새를 매만질 때, 거울이 탁하면 단정히 잘 되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거울을 깨끗하고 환하게 유지하여야 언제나 단정한 용모를 갖출 수 있습니다.
선비에게 벗도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마음과 행실을 모두 수양하는 선비에게 좋은 벗은 쟁우(爭友),
바른말로 내 허물을 고치도록 권해주는 벗입니다.
깨끗한 거울에 비추어 흐트러진 용모를 바로잡는 것처럼 벗의 바른말을 통해서
내 마음과 행실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벗 사이는 응당 이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벗은 다소 부담스러운 사람일 것 같습니다.
내 과오에 대해서 바른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전전긍긍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겁니다.
행동도 말도 생각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부담스러울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일입니다.
내게 그만큼 관심 가져주고 걱정해주는 것이니까요.
그런 벗은 일종의 보험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마음이 더욱 든든해집니다.
이제 내 주위에 이런 벗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바른말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글쓴이 : 하기훈(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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