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술잔아 내 곁에 가까이 오지 마라 酒杯使勿近

甘冥堂 2025. 1. 2. 13:52

將止酒戒酒杯使勿近
(장지주계주배사물근)
이제 술을 끊고 마시지 않으려 하니 술잔아 내 곁에 가까이 오지 마라 /辛棄疾(신기질)


술잔아 너 이리 좀 나와 봐라.
오늘 아침, 내 몸 상태를 점검해 보니,
오랜 세월 술을 퍼마셔 목구멍은 까맣게 그을린 솥처럼 타서 목이 마르고
이제는 잠자는 걸 좋아하여 우레처럼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며 잔다.
"유영(劉伶)은 고금을 통틀어 달관한 자로 술에 취해 죽거든 그 자리에 묻어달라" 했다고.
실로 이와 같다고 할지라도, 넌 知己인 나에게 참으로 못될 짓을 많이 했구나.
더구나 노래와 춤을 매개로 힘을 합해 날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원망은 크든 작든 좋아하기 때문에 생기고,
사물은 좋든 나쁘든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너에게 약조하노니, 머무르지 말고 속히 사라지거라.
내 아직 너 같은 술잔 정도는 박살 낼 힘은 있노라.
이에 술잔이 재배하며 말하기를,
물리치니 즉시 떠나겠습니다만,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오겠습니다.


술 한번 끊어보겠다고 작심한 사람이 어디 도연명 한 사람뿐이겠는가?
송나라 시인 辛棄疾(신기질)도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위와 같은 시를 지었다.

무인으로서의 기질이 물씬 풍기는 이 작품에서
술을 의인화하여 말을 건 시인의 모습이 재미있다.
술잔 정도는 박살 낼 힘이 있으니 썩 꺼지라고 호령하는 시인의 모습에서 처량함마저 느껴진다.


좋은 안주를 마주하고 앉아서도
술 한잔 마시지 못하는 처지를 그대는 알겠는가?
더구나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아지는 이 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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