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伶 (221년 ~ 300년)
서진 시기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으로 자는 백륜(伯倫)이며 예주 패국 사람이다.
유영은 키가 6척(지금 기준으로 약 138cm)에 용모는 볼품없었으며,
제멋대로 자유분방하게 놀면서 우주도 좁다고 여겼다.
유영은 어려서부터 과묵해 주위에 친한 이가 많이 없었지만,
친구인 완적, 혜강을 만날 때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활발해졌다.
혜강이 죽은 후에 사마소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출사하여 건위참군을 지냈고, 265년에 서진이 건국되자 무제 사마염에게 도가의 무위 정치를 권유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승진하던 다른 동기들과 달리
유영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니 사마염이 무능함을 이유로 파면시켰다.
술과 관련해서 일화가 많기 때문에 죽림칠현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지만,
이 사람이 술 마시던 일화의 대부분은 죽림칠현 해체되고 한참 뒤에 파직된 상황에서의 이야기다.
지독한 술꾼으로 사람들로부터 취후(醉侯)라는 별명이 붙었다.
술버릇 또한 좋지 않아 취하면 옷을 벗어젖히는 일이 많았는데,
누군가가 집을 찾아와 이를 비난하자
자신은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허락도 없이 자신의 속옷까지 들어왔냐고 했다.
아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말리자 유영은 스스로 끊을 수 없어 귀신에게 맹세하겠다면서 아내에게 술과 고기를 준비하게 하며,
꿇어앉아서 아녀자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면서 다시 술을 마셨다.
늘 작은 수레를 타고 술 한 병을 차고 다니면서 종자에게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하고서
종자에게 자신이 죽거든 곧장 땅을 파고 묻으라고 했으며,
육체를 흙이나 나무처럼 여기면서 즐겁게 세상을 돌아다녔다.
어떤 일에도 마음 쓰는 바가 없었으며, 어떤 사람과 서로 다투다가 그 사람이 소매를 흔들면서 일어나 치려고 하자
유영은 태연한 얼굴로 어찌 이 계륵 같은 자에게 존귀하신 주먹을 쓰려 하냐고 말하자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화를 풀고 돌아갔다.
문장을 지을 때 생각을 가다듬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주덕송 한 편만 지었다.
당시 서진의 사대부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풍류로 칭하면서 유영을 현자로 떠받들었고,
그의 이런 모습을 본받으려 하였다.
사마염은 이런 세간의 명성을 듣고 266년에 다시 조서를 보내 임용하려 했다.
하지만 유영은 출사를 원하지 않았기에 술을 퍼마시다가
조정의 특사가 마을 어귀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나체로 마을 어귀까지 뛰쳐나가 한껏 주정을 부렸다.
특사는 유영이 그저 술주정뱅이에 불과하다 파악하고 다시 조정에 돌아갔다.
이후로도 유영은 계속 술에 취해 마음대로 살다가 300년에 집에서 두강주를 3잔 마시고 쓰러지니,
쓰러진 그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죽은 줄 알고 시체를 묻어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일개 평민과 같은 최후 때문에 그 묘지의 위치가 불확실하여 고대부터 꾸준히 논란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중국 산둥성, 안후이성, 허난성 등 여러 도시에
진짜 유영의 묘라는 묘지들이 난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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