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亦快哉行 (불역쾌재행) 이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철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지은 시.
1.
跨月蒸淋積穢氛 (과월증림적예분) 달포 넘게 찌는 장마 오나가나 곰팡냄새
四肢無力度朝曛 (사지무력도조훈) 사지에 맥이 없이 아침저녁 보내다가
新秋碧落澄寥廓 (신추벽락징요곽) 가을 되어 푸른 하늘 맑고도 넓으면서
無端軒都一點雲 (무단헌도일점운) 하늘 땅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으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상쾌할까
2.
疊石橫堤碧澗隈 (첩석횡제벽간외) 산골 시내 굽이진 곳 돌무더기 가로막혀
盈盈滀水鬱盤迴 (영영축수울반회) 가득히 고인 물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을
長鑱起作囊沙決 (장참기작낭사결) 막고 있는 모래주머니 긴 삽으로 툭 터서
澎湃奔流勢若雷 (팽배분유세약뢰) 우레처럼 소리 내며 쏜살같이 흘러가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통쾌할까
3.
蒼鷹鎖翮困長饑 (창응쇄핵곤장기) 날개를 묵히면서 굶고 있는 푸른 매가
林末毰毸倦却歸 (임말배시권각귀) 숲 끝에서 날개 쳐도 갈 곳 별로 없다가
好就朔風初解緤 (호취삭풍초해설) 매서운 북풍에 처음으로 줄을 풀고
碧天如水盡情飛 (벽천여수진정비) 바다 같은 푸른 하늘 마음껏 날아갈 때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유쾌할까
4.
客舟咿嘎汎晴江 (객주이알범청강) 삐걱삐걱 노 저으며 청강에 배 띄우고
閒看盤渦浴鳥雙 (한간반와욕조쌍) 쌍쌍이 무자맥질하는 물새들을 보다가
正到急湍投下處 (정도급단투하처) 쏜살같이 내닫는 여울목에 배가 와서
涼颸拂拂洒篷牕 (양시불불쇄봉창) 시원한 강바람이 뱃전을 스쳐 가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상쾌할까
5.
岧嶢絶頂倦游筇 (초요절정권유공) 깎아지른 절정을 힘겹게 올랐을 때
雲霧重重下界封 (운무중중하계봉) 구름 안개 겹겹으로 시야를 막았다가
向晩西風吹白日 (향만서풍취백일) 이윽고 서풍 결에 태양이 눈부시고
一時呈露萬千峯 (일시정로만천봉) 천봉만학 있는 대로 일시에 다 보이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상쾌할까
6.
嬴驂局促歷巉巖 (영참국촉역참암) 야윈 말이 힘겹게 험한 길을 지나면서
石角林梢破客衫 (석각임초파객삼) 돌부리 나뭇가지에 옷자락이 찢겼는데
下馬登舟前路穩 (하마등주전로온) 말에서 내려 배를 타고 평온한 앞 길 따라
夕陽高揭順風帆 (석양고게순풍범) 석양 하늘 순풍에 돛을 높이 달고 가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유쾌할까
7.
騷騷木葉下江皐 (소소목엽하강고) 낙엽은 우수수 강 언덕에 떨어지고
黃黑天光蹴素濤 (황흑천광축소도) 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가 넘실댈 때
衣帶飄颻風裏立 (의대표요풍리립)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면
怳疑仙鶴刷霜毛 (황의선학쇄상모) 하얀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상쾌하랴
8.
隣人屋角障庭心 (인인옥각장정심) 이웃집 처마 끝이 앞마당을 막고 있어
涼日無風晴日陰 (양일무풍청일음) 여름날도 바람 없고 맑은 날도 그늘진 것을
請買百金纔毁去 (청매백금재훼거) 백금으로 사들여서 모두 다 헐어내고
眼前無數得遙岑 (안전무수득요잠) 먼 산 묏부리들이 눈앞에 훤하게 하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시원할까
9.
支離長夏困朱炎 (지리장하곤주염) 지루한 여름날 불볕더위에 시달려
濈濈蕉衫背汗沾 (즙즙초삼배한첨) 등골에 땀 흐르고 베적삼이 축축할 때
洒落風來山雨急 (쇄락풍래산우급) 시원한 바람 끝에 소나기가 쏟아져
一時巖壑掛氷簾 (일시암학괘빙렴) 얼음발이 단번에 벼랑에 걸린다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상쾌할까
10.
淸宵巖壑寂無聲 (청소암학적무성) 깊은 골에 밤이 들어 죽은 듯이 고요하고
山鬼安棲獸不驚 (산귀안서수불경) 귀신도 잠이 들고 짐승들도 기척 없을 때
挑取石頭如屋大 (도취석두여옥대) 집채 같은 큰 바위를 두 손 번쩍 들어다가
斷厓千尺碾砰訇 (단애천척년팽굉) 천 척 낭떠러지를 매질하듯 울려보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통쾌할까
11.
局促王城百雉中 (국촉왕성백치중) 장안의 성 안에서 움츠리고 지내기를
常如病羽鎖雕籠 (상여병우쇄조롱) 병든 새가 조롱 속에 갇혀 있듯 하다가
鳴鞭忽過郊門外 (명편홀과교문외) 채찍을 울리면서 교문 밖을 썩 나서면
極目川原野色通 (극목천원야색통) 산천과 들 빛이 눈에 온통 다 보일 때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통쾌할까
12.
雲牋闊展醉吟遲 (운전활전취음지) 흰 종이를 활짝 펴 두고 시상에 지그시 잠겼다가
草樹陰濃雨滴時 (초수음농우적시) 우거진 녹음 속에 비가 뚝뚝 떨어질 때
起把如椽盈握筆 (기파여연영악필) 서까래와 같은 붓을 손에 잔뜩 움켜쥐고
沛然揮洒墨淋漓 (패연휘쇄묵림리) 먹물이 흥건하게 일필휘지 하고 나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유쾌하랴
13.
奕棋曾不解贏輸 (혁기증부해영수) 장기 바둑 승부수를 내 일찌기 모르기에
局外旁觀坐似愚 (국외방관좌사우) 곁에서 물끄러미 바보처럼 앉았다가
好把一條如意鐵 (호파일조여의철) 한 자루 여의철을 손으로 움켜잡고
砉然揮掃作虛無 (획연휘소작허무) 단번에 판 위를 확 쓸어 없애 버리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통쾌할까
14.
篁林孤月夜無痕 (황임고월야무흔) 대숲 위에 외로운 달 소리 없이 밤 깊을 때
獨坐幽軒對酒樽 (독좌유헌대주준) 초당에 홀로 앉아 술독을 앞에 놓고
飮到百杯泥醉後 (음도백배이취후) 한 백 잔 마시다가 질탕하게 취한 후에
一聲豪唱洗憂煩 (일성호창세우번) 노래 한바탕 불러대어 근심 걱정 씻어 버리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유쾌할까
15.
飛雪漫空朔吹寒 (비설만공삭취한) 눈보라 분분하고 삭풍이 차가워
入林狐兎脚蹣跚 (입림호토각반산) 숲 찾아든 여우 토끼 다리 절고 있을 때
長槍大箭紅絨帽 (장창대전홍융모) 긴 창에 큰 화살로 홍전립 눌러 쓰고
手挈生禽側挂鞍 (수설생금측괘안) 산 채로 때려잡아 안장에 꿰어차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통쾌할까
16.
漁舟容與綠波間 (어주용여록파간) 푸르른 물결 따라 고깃배로 노닐면서
風露三更醉不還 (풍로삼경취불환) 야삼경 술에 취해 돌아갈 줄 모르다가
歸雁一聲驚破睡 (귀안일성경파수) 가는 기러기 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깼더니만
蘆花被冷月如彎 (노화피냉월여만) 갈꽃 이불 썰렁하고 초생달이 떠 있으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상쾌할까
17.
落盡家貲結客裝 (낙진가자결객장) 세간살이 모두 팔아 괴나리봇짐 꾸려 지고
雲游蹤跡轉他鄕 (운유종적전타향) 뜬구름 신세로 타향을 떠돌다가
路逢失志平生友 (노봉실지평생우) 뜻 못 펴고 유랑하는 지기지우 길에서 만나
交與囊中十錠黃 (교여낭중십정황) 주머니 속 돈 열 냥을 그에게 꺼내 주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유쾌할까
18.
噍噍磌鵲繞林梢 (초초전작요임초) 나무 끝을 맴돌면서 어미까치 짖어대고
黑質脩鱗正入巢 (흑질수린정입소) 시커먼 구렁이가 둥지로 기어들 때
何處戛然長頸鳥 (하처알연장경조) 어디선가 목 긴 새가 왝하고 날아와
啄將珠腦勢如虓 (탁장주뇌세여효) 성난 범처럼 머리통을 쪼아대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통쾌할까
19.
琴歌來趁月初圓 (금가래진월초원) 달 둥글면 거문고 타고 노래하기로 하였는데
無那頑雲黑萬天 (무나완운흑만천) 어찌할까 온 하늘을 먹구름이 다 덮다니
到了整衣將散際 (도료정의장산제) 옷을 모두 챙겨 입고 헤어지려 할 즈음에
忽看林末出嬋娟 (홀간임말출선연) 숲 끝에 얼굴 내민 예쁜 달을 보게 되면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반가울까
20.
異方遷謪戀觚稜 (이방천상연고능) 먼 지방 귀양살이 대궐 못내 그리워서
旅館無眠獨剪燈 (여관무면독전등) 여관 한 등 잠 못 이루고 등불만 만지작거린다.
忽聽金鷄傳喜報 (홀청금계전희보) 뜻밖에 금계의 기쁜 소식 전하는 말 듣고
家書手自啓緘縢 (가서수자계함등) 집에서 보낸 편지를 손으로 뜯었을 때
不亦快哉 (불역쾌재) 그 얼마나 흔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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