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詩 300首 飜譯

이백의 일생

甘冥堂 2013. 11. 15. 11:50

 

이백의 일생

 

이백은 자()가 태백(太白)입니다. 중국 당나라 현종과 숙종 때의 시인이지요. 하지장은 그의 시에서 이백을 하늘에서 귀양 온 선인으로 불렀습니다.

 

천재와 광인을 가름하는 선은 명백히 긋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나는 본래 초나라의 미치광이라고 이백은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참모습을 한마디로 파악할 도리는 없지요. 자유분방한 낭만주의와 격렬한 현실주의를 동시에 지녔으며, 탈속적 도가사상과 경세제민의 유가사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고매한 이상과 원대한 정치적 포부를 품고, 뛰어난 학문과 재능을 지니고, 끓는 듯한 정열을 비추어 열렬하게 현실참여를 희구했다가도, 홀연히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도통하고자 했던 이가 이백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모순투성이의 인간이요, 미치광이라고도 하겠습니다.”(장기근)

 

사마천은사기에서 독서 만권, 여행 만리라고 했습니다. 당나라 현종 701년 창명현(현재 지명, 사천(四川) 강유현)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백은, 5세 때 이미 글을 깨치고 10세 무렵엔 시경과 서경을 암송할 정도였습니다. 15세에 벌써 시문을 짓고 붕새가 우주를 나르는 장자의소요유를 외우며 상상력을 키운 가히 천재 소년입니다. 태백은 그의 어머니가 이백을 얻을 때 밤하늘 태백성(太白星)이 품에 안기는 태몽에서 따왔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백(), 자를 태백(太白)이라고 합니다.

 

청소년기의 이백은 좀 엉뚱한 구석이 있습니다. 정규 과목인 과거 공부는 내팽개치고 검술과 사기의유협열전에 빠져드는가 하면,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들어가는 고대 중국 환타지 소설을 탐독하는 등, 그야말로 환타스틱한 소년기를 보냅니다. 이백의 아버지는 용천검을 아주 잘 쓴 상인 검객이었다고 합니다. 이백은 이런 부친의 영향으로 검무에 일가견을 이룹니다. 시대를 떠나 훌륭한 인물은 스승을 잘 만납니다. 16세 때 만난 스승 조유는 필생동안 이백의 정신적 바탕이 됩니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중국 공자의 공부 방법이 사제 간 집중식 토론 공부였듯, 조유 역시 명토론 선생이었나 봅니다.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한 이 불우한 스승은, 영민한 제자 이백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성공을 빌며, 경험한 모든 경륜을 쏟아 부어 줍니다. 동서고금의 학문과 여행의 중요성, 천문 지리와 관상술, 국가의 흥망성쇠와 역사 속 걸출한 인물들의 품평까지 총망라된 지식의 보고였습니다. 이때 이백은 스승의 높은 학식에 매료되어 엎드려 절하며 마음 속 비범한 포부와 세상을 뒤덮을 웅지를 키웁니다.

 

드디어 스물넷의 청년 이백은 도시 성도를 거쳐 중원 만 리 밖의 여행길에 오릅니다. “키는 썩 큰 편은 아니었지만, 하늘을 향해 머리를 곧게 세우고 있었고, 체구도 우람하지는 않았지만 대범하고 시원스러웠으며, 용모는 준수한 편은 아니었으나 기상이 드높았다. 특히 양쪽으로 날카롭게 치솟은 눈썹과 사람을 쏘는 형형한 호랑이 눈은 그의 영웅적 자태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다. 허리에 석 자 길이의 용천검을 차고 손은 은 안장을 얹은 준마를 끌었으며, 등나무로 만든 가벼운 책 상자를 시종 단사에게 메게 하였다.”(안치,이백)

 

예나 지금이나 이십 대의 남자는 천하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백 역시 벼락출세를 꿈꾸며 드넓은 세상에 나아가 마음껏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상인의 아들이라는 모욕감과 함께 돌아온 세상인심은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습니다. 집에서 가져간 천금의 돈은 술과 고담준론에 다 탕진하고 병든 몸을 이끌고 벗 맹소부의 집에 얹혀 실의의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소부의 소개로 뜻밖의 행운을 잡습니다. 안주 땅의 고관대작을 지낸 허 씨 집안 무남독녀인 25살 노처녀와 혼인하여 데릴사위가 됩니다. 27살 때입니다.

 

부인이 재색을 겸비한 상당한 미인이었나 봅니다. 한동안 책을 읽으며 이백은 몸을 추스르며 고요히 지냅니다. 그것도 잠시, 서른을 넘긴 이백은 또 다시 잔뜩 허파에 바람이 듭니다. 부여잡는 부인을 뒤로 한 채, 인생 역전을 꿈꾸며 수도 장안 행을 결행합니다. 그 당시 당나라의 국운은 최고 전성기를 누릴 때입니다. 이백의 문장은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었으나, 여전히 장안에선 촌놈 취급을 받습니다. 오갈 데 없는 알거지가 된 이백은 장안을 배회하다가 결국 청운의 꿈을 접고는 3년 만에 낙향합니다.

 

35살 무렵의 그를이백전에서 안치(만주족, 이백 연구가) 낙양에 내려온 이백은 황금과 백벽으로 웃음을 사고, 한번 취하면 달이 넘게 왕후도 우습게 본다는 방탕한 생활을 보냈다.”고 적었습니다. 물론 그 뒤에도 집을 두어 번 뛰쳐나갑니다. 그가 또 다시 좌절과 눈물을 삼키며 돌아왔을 때는, 아내와 자식은 오래도록 굶어 영양실조에 피골이 상접한 채였습니다. 애석하게도 현숙한 아내였던 허 씨마저 불귀의 객이 됩니다.

 

중년에 아내 잃은 홀아비 신세로 놀고먹던 이백에게도 어느 봄날 사랑이 걸려들었습니다. 석류꽃 향기 좋은 이웃집 유부녀였는데, 이백이 시將進酒(장진주)를 읊자 담 너머로 생긋 웃으며 추파로 화답해온 것입니다. 단번에 심장에 불길을 당긴 이백은 일필휘지로 애모의 시를 씁니다.

 

詠鄰女東窗海石榴

 

                    이웃 처녀집 동창에 핀 해석류를 읊다.


魯女東窗下     노나라 처녀 동쪽 창 아래

海榴世所稀     해석류는 세상에 희귀한 것.

珊瑚映綠水     산호가 녹수에 비춰도

未足比光輝     광휘를 비교하기에는 부족하고

淸香隨風發     맑은 향기는 바람을 따라 피어나

落日好鳥歸     해질무렵 새는 날아오기 좋아하는구나.

願爲東南枝     원컨대 동남으로 뻗은 가지 되어

低擧拂羅衣     낮게 들어올려 비단 옷 스칠 수 있기를.

無由一攀折     한 번 잡아 꺾을 수 없기에

引領望金扉     목을 빼고 금빛 문을 바라다본다.


海石榴 : 신라에서 수입된 석류.

攀折 : 꺾다.

 

 

시를 다 쓴 이백은 여인에게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 문득 벽에 걸린 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살에 연애시를 동여매어 쏜 것이 그만 힘을 너무 넣어 엉뚱하게도 이웃집 마당에 떨어졌습니다. 그 집주인과 이백은 견원지간이었는데, 이 늙은 유생이 이백의 연애편지를 들고 동네방네 떠든 통에 난리법석이 났습니다. 이 일로 낯을 들 수 없게 된 이백은 소문이 잠잠할 때까지 이웃 동네 벗에게 찾아가 한동안 죽어지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성깔 못된 과부를 만나 덜컥 장가를 듭니다. 그 과부가 재미있습니다. 풍유남아 홀아비 이백이 돈푼깨나 있는 줄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막상 재혼해서 이백의 집에 들어와 보니 천하의 빈털터리요, 자식 둘 딸린 선달 중 상 선달이었습니다. 가난에 지친 이 과부는 끝내 이백을 차버리고 내뺍니다.

 

하늘이 무심치 않았던지 드디어, 42세 이백은 도사 벗인 원단구의 천거로 오매불망 소원하던 황제의 부름을 받습니다. 당 조정에 입조한 이백의 직책은 황제의 말을 받아쓰는 관리였습니다. 일약 스타가 된 이백의 인기는 가히 장안 제일이었습니다. 처음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환관들의 이간질로 곧 미움을 삽니다. 대취한 채 현종 앞에서 웃옷을 벗고 조서를 쓴 일과 양귀비를 시 속에 폄훼했다는 간신들의 흉간으로 3년도 안 돼 조정에서 쫓겨납니다.

 

44세 이백이 고향으로 돌아가다 낙양에서 만난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시인 두보(33)입니다. 만 가지 회포를 몇 날 밤 술로 달래며 이백과 두보는 역사의 갈림길에서 그렇게 영원히 헤어집니다. 그 무렵 쓴 시가 바로, 저 천하의 명시月下獨酌(월하독작)시편들입니다.

 

조정에서 쫓겨난 일이 이백에겐 뼈에 사무친 일이었나 봅니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도를 얻고자 술과 단약 중독으로 폐인 직전까지 갑니다. 그나마 낙향한 이백에게 마지막 행운이 찾아왔는데, 그 옛날 온 동네 난리법석을 떨었던 이웃 석류 집 과부와 삼혼을 치룹니다. 그녀의 알뜰한 보살핌으로 이백은 구사일생합니다.

 

안녹산의 난으로 당나라는 망국으로 치닫고, 58세가 된 이백은 황제 가족 간의 권력투쟁에 끼여 영왕 린(황제 숙종의 아우)의 편에 섰다가 속임을 당해, 영왕은 살해되고 그는 내란 부역 죄로 투옥됩니다. 천재일우로 대사면령을 받아 무죄 방면되지만, 말년은 몹시 쓸쓸하여 62세의 나이로 천재 시인 이백은 불후의 시편만 뒤로 남긴 채 파란만장한 생애를 접고 대붕이 되어 저승으로 날아갑니다.

(안치,이백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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