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현대 일본만화에 대하여
「이것이 일본 만화다」를 중심으로
차례
Ⅰ.들어가는 말
Ⅱ.일본인과 일본 만화
Ⅲ. 새천년을 맞는 현대 일본의 만화
Ⅳ. 논의의 의의와 한계
Ⅴ. 나가는 말
Ⅰ.들어가는 말
만화란 한자의 뜻 그대로 ‘자유분방한 필치로 그려진 그림’으로 칸과 칸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그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만화왕국이다. 일본 출판물중 만화출판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37.0%(2000년 기준)나 된다고 한다. 또한 만화가 다른 산업관업과의 연관성이 매우 큰 분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만화는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상품, 컴퓨터 게임으로 개발되고 TV드라마나 극장용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일본은 만화 왕국일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왕국이기도 하며 캐릭터왕국이기도 하다. 이들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 데에는 일본만화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는 사실상 일본의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읽혀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인으로 자부하는 이들에게도 만화를 논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만화는 정통예술과 문학의 세계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본 사회에서 만화의 역할에 대한 이해 없이 오늘날의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일본의 대중문화 중 만화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과, 일본만화가 일본 문화에 미치는 영향. 또 현대 일본만화의 위치와 미래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Ⅱ.일본인과 일본 만화
1. 만화에 나타난 현대 일본인의 모습
일본수상이었던 미야자와 기이치는 1995년 자신의 칼럼을 만화 주간지 <빅 코믹 스르리츠>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당시 75세의 존경받는 정치인이자 사상가인 미야자와는 아마 평소 만화를 거의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화 주간지를 선택한 이유는 명백하다.<빅 코믹 스프리츠>는 젊은 직장인과 잠재적 유권자 1백40만 명이 애독하는 영향력 있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일본에서 만화잡지야말로 대중에 접근하여 그들의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장 먼저 만화에 시민권을 부여한 나라이다. 일본은 단지 젊은이들의 오락물에 불과하던 만화를 소설이나 영화가 누리는 사회적 지위로 끌어올린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정말로 일본은 만화에 파묻혀있다. 일본의 출판당국에 의하면 1995년 일본에서 팔린 모든 단행본과 잡지 판매액 가운데 만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40%를 차지했다고 한다.
숫자만으로는 일본 사회에서 만화가 차지하는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 실제로 상상이 안 된다. 오늘날 일본에서 만화는 거대한 판타지 제도 시스템의 핵으로 군림하는 ‘초미디어’이다. 만화 제작은 우선 잡지(주간, 격주간, 월간, 격월간, 계간 등)에 ‘스토리‘ 만화의 연재를 시작한다. 만약 이 연재물이 성공하면, 곧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또 호화양장의 장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TV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 지며, 마지막으로 극장용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일반에게 공개된다. 특히 큰 인기를 얻은 만화의 경우 이런 일련의 생산 과정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만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산업을 추진하는 연료가 될 뿐만 아니라, 음악. 캐릭터, 문구류, 비디오게임. 오페라, TV드라마,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만화를 바탕으로 씌여진 소설 등 각종 연관된 비즈니스로 발전해 나간다.
2.망가(漫畵)란 무엇인가?
2-1 일본만화의 역사적 배경
도대체 망가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망가는 오랜 전통을 지닌 일본 고유의 예술이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형식과 융화된 그 어떤 것이다.
일본인들은 환상적이고 해학적이며 에로틱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예술, 특히 흑백으로 그려진 작품을 오랫동안 사랑해 왔다. 오늘날 만화의 직접적 원류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18세기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성행했던 형식인데, 하나는 코바에(鳥羽繪)로 조수회화를 그린 토바소죠라는 승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또 하나는 기뵤시(黃表紙)이다. 기뵤시는 일본 에도 시대 중기에 성행한 해학 문집으로 황색표지를 사용했으므로 ‘노랑표지’라고도 한다. 토바에나 기뵤시 모두 목판화를 이용한 노동 분업에 의해 대량 생산되었고, 그 생산 공정은 오늘날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목판화 그림책은 오늘날의 만화와 같이 연재되는 일도 잦았고, 에도와 오사카등지의 도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토바에나 기뵤시가 세계 최초의 만화책이었다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연속되는 네모진 여백에 그려진 풍선모양의 공간속에 대화가 들어가는 현대 일본 만화의 외관상 특징은 세기의 전환기에 조지 맥마너스(George McManus)의 <아버지가 되다>와 같은 미국 신문의 연재만화들이 수입될 때 미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2-2 일본 만화는 다른 나라의 만화와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 세계 만화를 분류하는 두 개의 주류는 미국만화와 일본 만화이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그 분량에 있다. 미국 만화책은 보통 하나의 연재만화가 30-50쪽 분량에 실려 월간으로 발간되는데 반해 일본의 만화잡지는 주간으로 발간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400쪽 이상의 분량에 20개의 연재만화와 단편만화를 싣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잡지는 40개 이상의 만화가 1천 쪽 분량에 실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만화가 단행본으로 만들어지면 그것은 보통 50권이나 그 이상의 분량이 되고, 한 권은 적어도 250쪽은 된다.
둘째로, 만화의 가격이 엄청나게 싸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32쪽의 미국 만화책은 그 속에 광고까지 들어 있는데도 2달러가 넘는데 반하여, 4백 쪽의 일본 만화 잡지는 3-4달러를 거의 넘지 않는다. 따라서 쪽 당으로 계산해보면 미국 만화책은 일본의 만화잡지보다 여섯 배나 비싸다. 이런 기적은 질 낮은 재생지와 흑백 인쇄, 대량생산에 의한 비용 절감으로 잡지를 만드는 일본 출판사들의 경제성에 의해 가능하다.
일본 만화잡지들은 일회적 소모품이다. 일본 출판사들은 독자의 정서이기를 바라지 않으며 ‘두고두고 읽어 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대부분은 빠르게 읽힌 뒤에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진다. 그 결과로 일본은 미국만화를 괴롭혀온 ‘만화의 투기성 매입’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국의 주류 만화 시장은 수집가들에 의해 휩쓸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입한 만화책을 읽기보다는 책장에 잘 간직하고 값이 오르기를 기다린다. 미국에서 일본만화제작을 대행하는 토렌 스미스는 수집시장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미국만화 출판의 경향을 꼬집어, “많은 미국 만화 출판사들은 기형적인 조폐창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셋째, 화려하게 채색된 미국과 유럽의 만화와는 달리 대부분의 일본 만화는 표지와 앞부분의 약간을 제외하면 흑백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적인 표현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몇몇 일본 만화가들은 흑백의 선으로 새로운 미적 경지를 개척하고, 선과 명암으로 깊이와 속도를 전달하는 새로운 기법을 창출해 냈다. 붓으로 그리는 전통적인 일본 수묵화의 미학으로부터 일본 만화가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대량생산되는 오늘날의 만화시장에 부응하기 위해 작가들은 흑백의 배경을 신속하게 그릴 수 있는 많은 도구들을 생각해 냈다. 예를 들면 배경에 사진을 넣어 극명한 대비를 만들기 위해 만화가들은 복사기를 자주 사용한다. 또 다른 현대적 도구는 즉시 적절한 명암과 질감을 만들어 내는 ‘스크린톤(screen-tone)’이다. 일본에는 도시와 바다 들 배경용 스크린 톤까지도 있다.
넷째, 아직도 미국과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많은 일본 만화의 질이 기교적인 면에서 저급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만화형식의 우수성을 한껏 자랑했으나 예술의 형식에 이르자 그들 모두는 약간 겸연쩍어했고, 자신들이 유럽 만화가들의 기술적인 솜씨에 뒤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만화의 진면목은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데즈카 오사무라는 단 한 명의 만화가가 이야기 구조를 바꿈으로써 일본 만화에 혁명을 일으켰다. 미국 애니메이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데즈카는 이전과 같이 10-20쪽에 하나의 만화를 담지 않고, 수백에서 수천 쪽에 이르는 소설적인 구조의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영화적인 테크닉’이라고 불릴 수 있는 다양한 원근법과 시각 효과를 통합해 사용했다.
그 결과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적은 단어를 사용하고, 하나의 행동과 생각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장면과 쪽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미국 만화책이 슈퍼맨이 어떻게 과거에 여주인공 루이스 래인을 구했는가를 한쪽의 분량에 상당하는 해설로 묘사한다면, 일본식 각색에서는 그것을 10쪽 분량 정도로 늘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처리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흑백 인쇄, 재생지 등 일본 만화 산업의 경제성이 한 몫 할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영화적인 스타일을 도입한 결과 일본 만화가들은 스토리를 더욱 발전시키고 캐릭터의 심리를 보다 복잡하게, 감정을 보다 깊게 묘사해 내게 되었다. 영화적인 스타일은 또한 미국과 유럽보다 훨씬 도상학적인 요소들을 일본 만화에 접목시켰다. 하나하나의 그림들이 모두 잘 그려질 필요는 전혀 없다. 줄거리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충분한 정도의 정보를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미국이나 유럽의 만화 애독자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읽을 때, 각 그림의 섬세한 예술성을 감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는 320쪽에 이르는 만화잡지가 20분 내에 읽히는 일이 다반사다. 이것을 다시 계산해 보면 한 쪽 당 3.75초의 속도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는 단지 ‘또 다른 언어’이고 장면과 쪽들은 독특한 문법으로 연결된 일종의 ‘단어와 문장들’이 된다. ‘만화를 보는 것과 일본어를 읽는 것은 거의 같다’고 일본인들은 말하곤 한다. 이것은 수긍이 가는 말이다. 왜냐하면 만화란 일종의 그림 또는 선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현실을 묘사하는 일본의 ‘상형문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일본 만화는 대부분의 미국 만화보다 엄청난 시각적 다양성을 제공한다. 미국 만화의 주류는 아직도 근육질의 남성과 아주 풍만한 여체라는 그리스 전통에 따른 인간의 형상을 묘사하는데 집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 줄거리 속에서 인간이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그려지고, 만화 같으면서도 사실적인 배경이 묘사된다. 만화의 다양성은 주제의 문제로 확대된다. 미국과 유럽의 만화는 오래전부터 만화책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심각한 주제를 다루어 왔다. 혹자는 이런 장르를 ‘시각소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미국의 만화의 대부분은 아직도 젊은 남성과 초인간적인 영웅 따위에 집착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 만화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들이 발견된다. 거기에는 최고 수준이 문학작품에 견줄만한 것들이 있다. 거기에는 남성과 여성을 위한 여러 등급의 포르노만화들이 있다. 거기에는 일터에서의 수직적 계급관계나 노점상이 정신적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진실한 대중매체로서 일본 만화는 어떤 취미를 가졌든 남녀노소 거의 모든 독자에 맞는 무엇인가를 반드시 생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것에 대한 찬가는 뼈를 에이는 현실과 함께하고 있다. 대다수의 만화들이 읽고 나면 곧 버려지는 운명을 가졌듯이 훌륭한 작품들조차 읽고 곧 버려져 작가의 에너지를 낭비시킨다. 대중을 상대로 인기를 팔기 때문에 만화가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고, 출판사의 탐욕은 젖이 마를 때까지 그들의 암소를 쥐어짠다. 그리하여 결국은 안상하게 말라붙은 작품들이 질질 끌려 계속 연재되는 것이다.
2-3 만화는 다른 매체와 어떻게 다른가?
시장의 논리로 보면 만화는 다른 매체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술적으로는 아직도 아이들을 위한 ‘값싼 오락물’이라는 인식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 만화는 예술적 논의의 대상으로는 삼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만화가들이 만화계의 톨스토이나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그들의 창조여행을 시작하나, 거의 실패한 끝에 가능하면 돈이나 벌겠다는 생각으로 재출발하게 된다. 이런 환경은 만화가들로 하여금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독자의 취향에 영합하여 성과 폭력을 미화하고, 상품화하도록 내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표현의 자유와 새로운 창조성이라는 결과도 초래했다.
만화라는 표현 수단은 다른 분야에 비하여 창조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다. 소설가나 영화감독은 오랜 훈련기간을 필요로 한다. 만화가의 경우 이 직업에 입문하려는 신인에게 필요한 것은 반짝이는 아이디어, 어느 정도의 체력과 지적 호기심. 그리고 펜, 연필, 종이 정도이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 특별히 대단한 예술적 감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표현 매체로서의 만화는 영화. CD, 소설. 그리고 TV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만화는 칼로리가 낮고 재미있는 오락물이다. 만화책은 몸에 지니기가 아주 간편하고, 어디를 가도 만원인 오늘날의 일본에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한다거나 시선을 끄는 일 없이 조용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수단이다.
3. 왜 일본 만화를 읽는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일본어 번역자나 통역자, 혹은 일본어에 능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일본 만화를 읽는 것이 일본어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많은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만화속의 언어는 다른 인쇄된 매체에서 볼 수 있는 것들보다 생생하고, 거리의 삶에 근접해 있으며, 많은 새로운 표현의 출처이다. 또한 시각적인 본질 때문에 만화는 일본어 입문자들에게 아주 훌륭한 배움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만화를 읽도록 권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당혹스러운 일본 사회의 모습중 하나는 일본인들의 대인 관계에서 보이는 겉치레 말(다데마에)과 속마음(혼네)의 구분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언동을 맞추는 습관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게 빈번히 사용되는 일본에서는 그것을 분간하는 일이야말로 사람들을 서로 조화시키고 공과 사를 구분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인은 자신들이 외국인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느끼고, 외국인은 외국인대로 일본인을 ‘이해할 수 없는 국민이다’라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화를 읽는다고 이런‘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곧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일본사회의 많은 불투명하고 깊숙한 국면들을 보여 줄 것이다. 일본만화는 일본인들에 의해 일본적인 사고와 언어로 쓰이고 그려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 만화의 새로운 ‘단어’와 ‘문법’을 일단 익히고 나면, 일본 만화란 그것을 창조한 작가의 전혀 걸러지지 않은 내면의 세계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만화가 TV, 영화, 잡지와 같은 매체가 갖는 집단 창작과 대대적인 편집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류 만화 산업은 집단 공정의 경향을 띠며, 만화의 모든 작업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출판사의 통제하에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도 만화가는 많은 문하생을 고용한다. 그러나 보통은 만화가 자신이 모든 작업의 중심에 서 있으며, 작품 생산에 대한 모든 지시를 내린다. 만화가는 꼭 교육을 잘 받았거나, 주제의 문제에 관해 자주 고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만화가 세상에 대한 아주 생생하고 개인적인 시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전념하면 된다. 이런 결과로 매년 20억 권 이상 생산되는 만화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무의식 속에 담겨있는 갖가지 환상의 세계를 이야기 한다.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손때 묻지 않은 일본인 본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보통의 서구인들의 일상사에 일본문화가 얼마만큼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날로 커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대중문화에 스며들어, 이제는 서서히 그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할리우드 영화, 록 음악 비디오, 예술가들의 작품세계에도 많든 적든 점점 더 파고들고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의 색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 폴 고티에 같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일본 만화잡지의 표지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새롭고 이국적인 색깔을 쓰고 있다고 1995년 10월3일자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세계의 어린이들은 만화에 뿌리를 둔 TV용 일본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며 자라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모든 국가와 지역을 막론하고 그런 작품들 뒤에 어떤 생각과 과정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왜 <우주소년 아톰>은 1960년대의 다른 TV 만화영화에 그토록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왔는가? <우주전함 야마토>에 숨겨진 민족주의적인 의식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가? 누가 로봇에 대한 생각을 변화시켰는가? 왜 <세일러 문>의 여성 캐릭터들은 그렇게 큰 눈을 가지고 있는가? 만화를 통하여 일본 문화를 알면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보인다.
일본 만화를 읽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매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일본은 만화에 그런 위치를 주고, 그것이 지닌 잠재력을 그런 거대한 규모로 실험하고 있는 최초의 국가이다. 만화는 실험중이다. 어렵고 딱딱한 정보의 전달 수단으로 일본은 얼마나 더 만화를 이용할 수 있을까? 한때 주로 어린이용이었던 이 새로운 매체가 어떻게 다른 매체들과 공존하는가? 만화가 문자에 기반을 둔 교신 체계를 대체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오직 시간만이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모두가 일본 만화를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일본이나 일본말을 배우는 것을 포함하여 어떤 사회학적인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일본 만화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오락거리이기 때문이다.
Ⅲ. 새천년을 맞는 현대 일본의 만화
19세기 말 서구사회에서는 일본을 여행하고 나서 이 이상한 나라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이 유행처럼 된 적이 있었다. 뒷날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화성 생명체에 대한 이론을 주장한 퍼시벌 고웰(Percival Lowell)도 이 유행에 동참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888년에 쓴 극동의 혼>이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실제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와 똑 같지만 전혀 다른 종의 인간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요술 거울로 우리 자신들의 인간성을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거울은 우리에게 친밀하면서도 뭔가 뒤틀린 모습을 보여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웰은 일본 만화를 읽을 기회가 없었다. 대부분의 일본 문화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만화도 서양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데가 있다. 그리고 이 ‘같음’과 ‘다름’이라는 두 힘의 방향이 교차하는 곳에는 언제나 배울 것이 많이 있다.
1. 동인지의 세계
1-1 슈퍼 코믹 시티
만화 애독자들이 여는 대규모 만화 박람회에서 팔리는 만화책들은 거의 동인지 아니면 특정 팬을 가지고 있는 ‘팬진(Fanzin)이다. 창작하는 사람도 독자도 모두 만화 팬이고, 그리고 수집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혀지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동인지나 팬진의 작가들은 보통 ’서클‘이라 불리는 뜻이 맞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며 작품을 만들고, 출판하기 위해 공동으로 일한다. 오늘날 일본에는 5만개 이상의 서클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박람회에서 팔리는 동인지의 장르는 다양하다. 동인지라는 하위문화는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당당한 산업이 되었다. 동인지를 만들고 있는 아마추어 만화가들은 그들의 자금을 공동 출자하여 주류 만화시장의 책들과 질적으로 견줄만한 그들 자신의 만화책을 1백부에서 많으면 6천부 까지 찍어낸다. 인쇄수준도 상업지에 필적할 정도이고, 제본 표지, 디자인 칼라, 인쇄수준이 일류 상업만화잡지 수준의 것도 있다. 따라서 이런 박람회를 통하여 인쇄소나 미술용품 회사들이 넓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인지 시장을 후원하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1-2 고미케토
일본에서 열리는 모든 만화박람회의 원조는 ‘슈퍼 코믹 시티’가 아니라, ‘고미게’ 혹은 ‘고미케토’로 불리는 대회이며, 이 말은 영어의 ‘코믹 마켓(Comic Market)에 대한 일본식 표현이다. 고미케토는 만화 애독자들을 위해, 만화 애독자들에 의해 조직된 비영리 대회로써 도쿄에서 매년 9월과 12월에 열린다. 1980년대에 중반에 형성되어 ’야오이‘(절정 없고, 결론 없고, 의미 없다는 뜻의 일본어 단어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말) 장르에 집중된 열광적인 여성 독자를 가지고 있는 슈퍼 코믹 시티와는 달리, 고미케토는 1975년 12월에 처음 개최된 이래 남성 독자들이 전체 참가자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다. 1995년 3일간의 여름행사 동안 3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하루미 무역센타에 몰려들었고 6만종 이상의 동인지들이 선을 보였다.
왜 일본에서는 이러한 동인지와 그들의 행사인 만화박람회가 그토록 인기인가? 만화가인 요네자와 부부는 무엇보다도 박람회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며 그곳에 참석하면 오직 거기에서만 팔리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내밀한 즐거움과 스릴이 있다고 답변했다. “동인지 작가에게서는 처음부터 기성작가의 기교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것은 미국에서의 록 음악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수준의 교육도 필요하지 않으며, 젊은이들이 펜과 종이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동인지는 명화나 상업적인 만화와 달리 그 결과를 즉각적으로 내놓을 수 있으나가요. 상업지 만화는 그렇지 못합니다.”
2. 오타쿠
오타쿠는 한자로 집을 가리키는 ‘다쿠(宅)’ 앞에 경칭인 ‘오’가 들어간 말이다. 그러므로 그 뜻은 ‘너의 집’. 또는 ‘너의 가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타쿠는 일본의 계급에 따른 수많은 경칭의 하나로, 특히 그다지 친하지 않은 상대를 공손하게 부르는 ‘당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쓰이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젊은 남성 팬들은 ‘오타쿠’로 서로를 칭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미야자키 사건‘이 일어났다. 마야자키 츠토무라는 27세 청년은 7세 이하 여자아이 네 명을 유괴 살해한 용의자로 그의 아파트에서는 6천여 개에 달하는 공포영화, 잔혹물, 포르노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또 그 만큼의 공상과학 소설과 잡지 들이 발견되었다. 그는 그 분야에서 가장 어둡고 변질된 장르인 아동 포르노에 휩쓸려 환상과 현실을 구별할 수 없게 된 자였다. 더욱이 동인지 시장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미야자키가 자신의 창작물을 고미케토에서 팔았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곧바로 오타쿠와 오타쿠족에 대한 보도가 대중매체를 통해 홍수를 이루며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은 사회에서 위험하고 자폐증에 걸린 유별난 인간들이라는 인상을 만들어 냈다. 교양 있는 대화 속에서 존칭의 의미로 쓰이던 오타쿠는 곧 현실세계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과 적절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젊은 남성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으며, 도색만화에 파묻혀, 성적으로 위험하고 변태적 경향을 가진 채 대상물에서 피난처를 구하는 젊은 남성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정신적으로 병들어 사회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오타쿠‘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1995년 봄 도쿄의 지하철에서 살인 신경가스가 뿌려진 사건이었다. 범인은 옴진리교라는 세기말적인 종파의 교주였다. 옴진리교는 포교의 수단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제작출판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그런 끔찍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하다는 사실이었다.
3. 일본 만화는 유해한가?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 하나는 “왜 일본 만화는 그렇게 폭력적이고 외설적입니까?”이다.
현대 일본 만화는 미국 만화와 흡사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수세기에 걸친 일본 예술의 전통을 물려받았고, 그 전통은 유쾌하고, 해학적이고, 외설적이며, 시각적 폭력에 대한 특이한 미학을 가지고 있다. 일본 만화는 에도시대(1600-1867년)후기에 인기 있던 대중 예술의 후손이며, 그 예술은 성을 과장하고, 사무라이가 배를 가르고, 사방에 피가 튀는 깃의 폭력을 양식화했다.
그리고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일본 만화와 폭력성과 외설이 얼마나 심하건, 그것이 일본 사회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약 만화에 나타난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면, 일본은 폭력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던 1980년대의 베이루트나, 성적인 방종이 극을 달리던 1960년대의 샌프란시스코와 다를 바 없어야 한다. 성의 개방과 거대한 섹스산업, 도시 총격전의 증가와 도쿄 지하철의 신경가스 공격 등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안정된 국가들 중 하나로 남아있다. 폭력과 성 범죄의 비율이 미국보다 훨씬 낮은 것은 물론이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폭발하는 기간에 일본의 범죄율은 도리어 주목할 만큼 떨어졌다.
일본에서 환상과 현실의 차이는 대단하다. 그러나 일본의 만화 독자들은 환상과 현실사이의 차이를 잘 구별하는 것 같다. 일본의 고등학생이 AK-47 기관총을 구하여 얄미운 선생들에게 갈겨대는 것은 만화의 한 장면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의 고등학생에게 같은 경우를 대비해 보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가 된다. 이는 일본 사회가 가진 고유의 안정성이 사람들을 좀 더 여유를 갖고 환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생생한 환상은 도리어 이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는 원초적인 충동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만약 일본 만화를 어떤 것과 비교해야한다면 그 대상은 미국 만화가 아니고 비디오나 베스트셀러 소설이 타당하다. 일본 만화가 폭력이나 성을 다루고 있다면 미국 비디오 대여점에도 그 정도의 비디오가 즐비하다. 또 영국이나 미국 여성들은 에로틱한 연애 소설을 좋아하는데, 일본 여성들이 읽는 만화 중에도 성을 묘사한 연애 만화가 많다.
4. 표현의 자유와 규제
초등학생과 30대 회사원이 지하철에서 나란히 서서 제각각 <주간소년점프>를 읽고 있는 모습은 일본 만화의 특성가운데 하나를 가장 명확하게 대변한다. 원래 이 잡지는 중학생 정도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른들이야 좋아하는 것이라면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읽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교육상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어른 대상의 만화와 어린이 대상의 만화를 구별하지 않고 읽는 이런 현상은 곤란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런 풍조가 만화의 세계를 떠나 현실문제로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1980년대 후반을 지나며 만화의 내용에 대한 관습적인 규제가 많이 무너졌다. 그때까지 일본의 만화에는 성교나 성기에 대한 공공연한 묘사를 금지하는 확실한 규제가 있었고, 또 어떤 것은 그려도 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는 확실한 사회적 합의가 암묵적으로 있어왔다. 그러나 이런 지침이 사라지자 만화잡지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이에 따라 <엔젤>, 여성에 대한 성 폭력을 허용하고 있는 듯한 내용을 담은 ‘강간하는 남자’라는 뜻의 <레이프맨>, 그리고 ‘로리콘’ 만화들이 주류 만화잡지들과 청년 이하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잡지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로리콘 바이러스’에 의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오염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미야자키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의 기성 지도자들은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에 엄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질려버렸다.
와카야마 현 겐타나베 시에 사는 몇 명의 가정주부들이 음란 만화를 규제하자는 운동을 시작했고 이것은 ‘유해만화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임’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 유해만화 규제운동은 전 일본에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섹스와 폭력만화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리고 이즈음에 각계각층을 망라한 전국적이고 강력한 ‘유해만화 추방운동’이 일어났다. 음란 만화에 대항한 강력한 지방法들이 일본의 여러 현에서 통과되었다.
그러나 1990년 9월4일 일본의 막강한 중앙 일간지인 <아사히신문>은 ‘쓰레기 같은 만화가 너무 많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일본 만화에 성행위 장면이 50%이상이라는 것과 ‘포르노가 합법화된 미국이나 유럽에서 조차도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이렇게 심하게 섹스의 홍수가 난 지역은 드믈 것이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사설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물론 만화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법률이나 조례로 규제할 수는 없다. 설사 문제가 되는 잡지들이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출판사들 사이의 토론과 자숙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1994년 말에 이르러 논쟁은 벌써 정점에 다다랐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성인용’표시가 붙은 만화 잡지는 사라져 갔다. 왜냐하면 서점들이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된 로리콘 만화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주류 만화잡지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1993년 음모와 성기의 묘사에 대한 일본의 오랜 금기가 마침내 무너지자, 성인 만화는 더욱 노골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만화의 미래는 무엇인가?
수십 년 동안 일본의 대중매체는 고질라 같은 일본 만화 산업의 화려한 성장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1995년 3월27일 일본의 주요한 시사 잡지인 <아에라>는 색다른 기사를 실었다. “만화업계 황혼의 시작”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그 기사는 ‘전후 기간 동안 만화는 5조5백억 엔에 이르는 사장으로 팽창하였지만, 그런 괄목할 만한 성장을 과시해 온 이 오락 세계의 챔피언도 한계가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 거대 산업은 온갖 문제들에 의해 안팎으로 서서히 포위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1993년 전체 만화 판매는 전년도 대비 8% 성장했으나, 두 개의 중요한 장르가 성장을 멈추었다. 하나는 청소년만화로 0.4%가 줄었다. 다른 하나는 젊은 남성을 위한 만화로 2년 연속 0.7%가 줄었다. 당장이라도 암운이 드리워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떠는 <아에라>의 기사는 만화산업이 그간의 계속적인 성공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5년의 전반적인 만화의 수출과 내수 판매는 늘었으나, 퍼센트로는 수출에서 전년 대비 0.5% 감소하였고 언제나 돈을 벌어다 주던 만화 단행본의 수출이 0.03% 줄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만화계의 염려는 현실적인 공포로 바뀌었다. 언제나 침착한 출판과학연구소마저도 1996년 3월에 ‘성장 신화의 한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을 정도다.
<아에라>의 기사는 퇴보의 이유로 좋은 만화의 부족을 들며 편집자들에게 그 책임을 추궁했다. 요즘의 대형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은, 만화에 대한 열정으로 일하며 만화가와 더불어 공동 창조자의 역할을 하던 초기의 전설적인 편집자들과는 달리, 일하는 시늉만 내는 겁 많은 월급쟁이가 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어린이 만화는 비디오게임이라는 막강한 경쟁자를 만났다고 이 기사는 지적했다. 어린이들이 30시간 이상을 비다오게임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반면 만화잡지를 다 읽고 쓰레기통에 던지는 데는 20분이면 된다. 따라서 만화는 싼 가격에 따른 이점을 상실했고, 이제는 설사 만화 잡지가 비디오게임의 10분의 1로 가격을 내린다 해도 경쟁력을 회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만화가 계속하여 성장할 수 있는 분야는 한정되어 있다. 현재 일본의 모든 책과 잡지의 40%이상이 만화이기 때문에 성장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장르를 개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화 독자들의 핵심세대가 점차 늙어 가기 때문에 나이 먹은 독자들을 위한 만화가 늘어날 것이다. 출판사들은 오직 노인을 위한 만화잡지 ‘실버만화’를 만들기 위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열심히 의논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해외 시장은 미개척된 거대한 새로운 시장을 대표한다. 오늘날 만화 산업이 하나의 성숙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은 확실하다.
만화 산업은 너무 오랫동안 걱정 없이 지내왔고, 허리주위에 군살이 너무 많이 붙었다. 만화가들은 더 이상 좋은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목말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잠재적인 소득원인 창조력은 비틀거리고 있다. 일부 성공에 취한 많은 만화프로덕션은 대량 생산에 혈안이 된 공장처럼 보인다. 20세기 후반에 많은 일본 제조업체들을 괴롭힌 ‘질보다 양’이라는 질병에 걸린 것이다. 세상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특별한‘ ’더 재미있는‘ ’더 우수한‘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업계는 규모와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줄거리를 지루하게 만들고 시각적인 부조화를 가져와 만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일본 만화가 내부적으로 처해있는 현실이다.
이제 가장 뛰어난 일본 만화들은 태반이 주류시장의 밖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를테면 동인지, 에로만화,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질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1995년 <코믹박스>의 한해를 정리하는 특집호의 제목이 ‘일본 만화는 끝났는가?’였던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최초로 만화가 표현 매체로써 완전히 나래를 편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성인들이 풍자와 변형, 그리고 과장을 본질로 하는 이 매체를 주요한 정보원으로 삼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또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출판사나 종교, 정부가 이 매체를 악용하거나, 이 매체로 무슨 일을 꾸밀 경우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만화로 어렵고 심각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영화나 문학의 경우와 다를 것이다. 설사 주석을 달고,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만들어진다 해도 만화는 상당한 왜곡과 함께 현실을 묘사할 것이다. 어느 세대 전체가 만화속의 현실감각으로 살아간다든지, 또는 그들이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에 대한 정보를 만화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겠는가?
일본사회는 점점 만화化 되어 가고 있고, 그것은 사람들의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국가의 지성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80년대에 일본에서는 ‘경박단소(輕薄短小)’라는 표현이 유행했다. 그것은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는 당시의 경향을 나타낼 뿐 아니라, ‘가벼운’ 지적 활동을 선호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만화가 문학과 영화를 비롯한 다른 분야의 예술에 본격적으로 깊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만화의 창조와 그 생산 기법은 ‘저칼로리’ 예술의 표본이고, 오늘날 일본의 문학과 영화는 점점 더 진지하고 지적인 노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만화산업은 성장률의 수치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그러나 만화가 사회의 주류로 커 감에 따라 일본 사회는 더욱 많은 문제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만화는 사회의 각 분야로 더욱더 침투해 들어가고, 표현 수단으로도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할 것이다.
Ⅳ.논의의 의의와 한계
1.이 책을 택하게 된 이유
먼저 과제물 선정에서 무슨 책을 어떻게 골라야하는지에 많은 고민이 있었으며, 막연하기까지 했다. 다른 과목과 달리 참고문헌을 예시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 않겠나 생각하였다. 구하려던 책은 이미 절판이 되어 없었고 도서관에서도 마땅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중고서적 판매 사이트에서 겨우 이 책을 발견 할 수 있었다. 1999년 판이라 다소 오래되었다는 점과 이 책에서 인용한 자료들이 1995년도의 자료인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저자는 미국인이면서도 일본문화에 대한 성실하고도 진지한 태도가 돋보였다. 한 나라의 문화를 그것도 한 장르에 대하여 깊게 파고드는 그의 자세는 상이한 두 문화 간에 진정한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또 그들의 문화 잔재가 아직도 우리의 생활과 문화예술방면에 그대로 남아있는 시점에서 그들의 하부문화인 만화에 대한 공부를 한다는 게, 한편으로 이것도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대중문화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2. 서구 중심주의적 이해와 한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추산에 의하면 2000년도 만화시장의 규모는 우리 돈으로 개략적으로 환산하여 일본이 5조3천억 원, 한국이 6천억 원. 프랑스가 2천5백억 원, 미국이 2천6백억 원이라고 추산했다. 만화 왕국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의 규모가 미국과 프랑스의 그것을 합한 것과 비슷한 규모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일본과 미국 만화하고만 비교를 했다. 모든 것을 화폐 금액화 하여 단순비교 할 수만은 없겠지만, 같은 동양권의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하고만 비교한 것이 이 책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미국은 일본의 만화시장 규모의 5%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규모임에도 만화산업의 원조인 양, 또 예술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인 양 미국의 것을 우위에 두려는 것은 일종의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3. 만화를 읽는 일본인에 대한 이해
초등학생과 30대의 샐러리맨이 지하철에 나란히 서서 같은 제목의 만화잡지를 본다는 게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흔한 일이라고 한다. 수상까지 지낸 유명정치인이 만화 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1995년 한 해 동안 19억 권의 만화잡지가 팔려,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년 간 평균 15권의 만화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또 아이슬란드 국민총생산의 2배에 이르는 70-90억 달러에 이르는 만화가 팔렸으며 1인당 50달러 이상을 만화를 사는데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작가가 분석하듯 저칼로리의 경박단소의 가벼운 지적활동을 탐닉하는 국민들이라고 일본인을 매도해 버릴 수 있는가? 어떤 사회학적인 미사여구도 필요 없이 다만, 일본 만화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오락거리일 뿐이라고 이해해야 되는가?
4. 만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어느 교실에나 있을법한, 운동에는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에만 죽치고 있을 법한 사람. 그러나 그들 대부분에게 공통적인 점은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고....친구들도 없을 것 같은데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인간들이 수없이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다. 이런 젊은 팬의 생태를 기존의 ‘마니아’나 ‘열광적인 팬’이라고 단적으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미진한 감이 있어. 그들을 ‘오타쿠’라고 부르기로 했다. 만화에 빠진 열광적인 팬을 묘사한 것이다.
미야자키라는 27세 청년에 의한 여자아이 유괴 살해사건, 도쿄의 옴진리교 교주에 의한 도쿄 지하철 살인 신경가스 살포 사건 등, 이 사건에 관련된 자들은 하나같이 자폐적이고 열광적인 팬이자 광란의 만화 광들이었다. 이 같은 사람들이 일본에만 있으란 법은 없다. 성과 폭력에 무방비로 내 팽겨 처진 청소년들은 현실과 환상에 대한 구별을 할 능력이 부족하다.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일자리를 못 잡아 방황하는 이 시대의 청년실업자들도 어떤 자극에 의해 폐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일본인의 만화를 접하는 의식은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전 국민이 만화 마니아가 되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사회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5. 만화의 미래
코믹마켓이나 슈퍼코믹시티 같은 박람회장에 몰려드는 인파가, 하나의 박람회에 보통 20만 명 이상의 팬들이 모인다는 현상을 볼 때, 일본 만화의 미래는 결코 어둡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1995년을 전후해서 만화잡지의 생산액이 정체 내지는 감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더욱이 만화잡지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인 비디오게임이 날로 번창하여 만화잡지와의 치열한 경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만화잡지의 성장에 대한 환경은 썩 우호적이지는 않다. 더구나 각종 전자매체의 발달로 이제는 책방에 가서 종이책을 사는 것보다는 앉아서 즐기는 시대가 된지 오래다. 굳이 만화잡지를 책장을 침 묻혀 넘기면서 봐야할 필요는 없는 세상이다. 소위 e-book 시장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만화가 어떻게 진화할는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대강의 방향은 정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Ⅴ. 나가는 말
일본만화가 일본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만화 자체만으로도 그렇고 관련 산업인 애니메이션, 캐릭터, TV용 만화. 극장용 만화, CD. DVD. 게임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다른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만화의 생명이란 그 표현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에 있다. 만화가 유해하다는 논란도, 이에 따른 정부의 규제도 있었지만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성숙된 문화가 있기에 그런 성장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중문화는 대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대중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일본인들이 하부문화라 할 수 있는 만화에 왜 그렇게 깊숙이 빠져들었나 하는 점은 외국인인 우리로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일본인의 어떤 기질, 경박단소한 것을 좋아하고, 가벼운 지적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일방적인 편협한 생각이 될 것이다. 또 절대 그렇게 생각하여서도 안 될 것이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의 것만 내세울 수는 없다. 소위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일본만화의 창조성과 그 성장배경을 이해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경계해야 할 점은 그에 맞게 개선하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 이것이 일본만화다. 프레드릭 L. 쇼트 지음. 김장호. 박성식 옮김. 1999.10.15. 도서출판 다섯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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