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산책-순자의 성악설 및 권학편과 관련하여
순자는 고대 중국의 혼란기였던 전국시대 후반에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맹자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사상가로서, 맹자와 달리 성악설을 제창하였고
자연의 길과 인간의 길이 별개라는 합리적인 자연관을 제시하였다.
순자는 당시 학술의 중심이었던 제나라 직하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학문을 섭렵, 비판하면서
매우 포괄적인 유학 이론을 구축하였다.
이 과제물에서는 순자의 『권학』을 중심으로 유학의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저서 중에 『권학(勸學)』편은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일독하여야 할 에세이라고 생각된다.
권학편 첫머리는 학불가이이(學不可已而: 배움은 그쳐서는 안된다.)로 시작 된다.
학(學)이란 모범적이고 윤리적 인간이 되는 것으로 이러한 學은 계속해서 전 생애를 통해 지속된다.
가장 가까운 목적은 학자-사대부가 되는 목적이며 궁극적 목적은 聖人이 되는 것이다.
‘학문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가? 그 방법은 경문을 외우는데서 시작하여 예기를 읽는데서 끝나며,
그뜻은 선비가 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성인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노력을 오랫동안 쌓으면 그런 경지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학문이란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다(學至乎 没而後止也)..
그러므로 학문의 방법에는 끝이 있지만 그 뜻은 잠시라도 버려둘 수 없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것은 사람이고 학문을 버려두는 것은 짐승이다.’(『권학』)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라는 청출어람(靑出於藍)도 배워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얻지만 쪽보다 푸르며 얼음은 물로 만들어지지만 물보다 차갑다.
(青 取之于藍 而青于藍 冰則為水 而寒于水)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이나 먹을 것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짐승들과 거의 다름이 없다.
아이들은 누가 뭐라해도 그들의 본능과 욕심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은 본성상 이익을 좇고 욕망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사회혼란이 야기된다.
순자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은 곧 情欲인데 이것은 인간이 행동을 유발시키는 동기가 된다.
따라서 정욕을 다루는 행위는 일정한 규제나 한계가 정해지지 않을 때는 나쁘거나 악한 것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규제와 정의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기에 대해 매일 살피면 밝아지고 행동에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고 했다. 성악설을 주장하는 배경이다.
‘나무가 곧아서 먹줄에 들어 맞는다 해도 굽혀 수레바퀴를 만들면 굽은 자에 맞게 되고
비록 마싹 마른다 하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것은 굽혔기 때문이다.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 처럼
군자도 널리 배우며 매일 자기에 대해 살피면 밝아지고 행동에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
맹자의 성선설이란 긍정적이고 좋은 감정을 사회적으로 더욱 확충하자는 것이라면,
순자의 성악설은 부정적인 감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감정을 조절하여 사회적 화합을 췌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바로 ‘情’에 기반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유가가 내린 두 가지 처방의 방식이었다.
긍정적 감정이냐 부정적 감정에 주목하느냐 하는 차이가 중요한 것이다.
순자는 인간의 몸을 이루는 주요 부분들이 갖는 고유한 능력들을 구분하는데,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이목구비와 형체 그리고 마음은 각각 고유한 직능이 있다.
모든 감각기관은 분별력을 그 특징으로하며,
인간의 마음 또한 열고희노애락애오욕(說故喜怒哀樂愛惡欲)을 구분하는 데 그 직능이 있다.
이렇게 묘사되는 마음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맹자가 생각하는 능력을 강조하듯이 순자의 마음 또한 특수한 능력이 부여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도리(道)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선한 행동을 보면 마음을 가다듬고 반드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선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조심스러운 자세로 반드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선함이 자신에 있게 되면 견고한 자세로 반드시 스스로 그 선을 즐거워해야 한다.
선하지 않음이 자신에게 있게 되면 꺼림칙한 자세로 반드시 스스로 싫어해야 한다.’ (순자 『修身』)
순자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육체의 군주이자 신명의 주인으로서 이미 스스로 완전한 주체의 의미를 부여한다.
스스로 금하고 스스로 시키며 스스로 빼앗고 스스로 취하며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그친다.
그러므로 마음의 용태는 그 사물의 선택에 있어 남이 금하는 일 없이 반드시 스스로 확인하고
그 사물의 접촉에 있어 뒤섞여 많더라도 그 정수는 통일되어 갈리지 않는다고 했다 (순자 『정명』)
또한 순자는 가르침의 중요성과 거처, 그리고 교유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나라나 월나라 오랑캐들의 자식들도 태어났을 때에는 같은 소리를 내지만
자랄수록 풍습이 달라지는 것은 가르침이 다르기 때문이다.
쑥이 삼밭에서 자라면 잡아주지 않아도 곧아지고, 하얀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그와 함께 검어진다.
난괴의 뿌리를 지(芷)라고 한다. 그것을 오줌에 담가두면 군자는 가까이 하지 않고 서민들도 몸에 차지 아니한다.
그 본래의 성질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담가두었던 곳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거처함에 있어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 교유에서 반드시 사인(士)에 접근하니,
사악한 길에 빠짐을 막고 중정한 덕에 접근하기 위한 때문이다.’ 『권학』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이는 군자가 되며 어던 이는 소인이 되는가?
맹자는 생각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하였고,
순자의 예란 어떤 인위적 강제나 규명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을 주어진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위로 드러날 수 있는
일정한 형식을 부여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육. 교유. 처세에 대한 가르침이 실로 대단하기 이를 데 없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된다. 학문은 죽어서야 끝나는 것이다.(學不可以已矣, 學至乎 没而後止也)
후학들은 이 경구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배움의 길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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