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미래는 무엇인가?
젊음이 봄과 여름이라면, 늙음은 가을과 겨울이다.
얼마 전까지 대리석 같았던 피부는 어느새 깊은 주름으로 가득하고,
거울에 보이는 나의 얼굴은 더는 내가 아니다.
이제 초저녁부터 졸리기 시작하고
내용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TV 연속극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
몸과 머리만이 아니다.
더는 돌아오지 않는 젊음의 첫 희생자는 마음이다.
기쁨과 기대로 가득하고 새로운 날이 언제나 기대됐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세상은 어둡게만 보인다.
새로운 하루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고,
우리의 마음은 점점 절망과 냉소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
왜 젊음은 언제나 긍정적이지만, 늙음은 비관적이고 어두울까?
물론 세상 그 자체가 어둡고 우울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능하기 짝이 없고 의미와 재미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부모님들의 삶.
우리는 언제나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해
언제나 결국 부모님과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젊은 시절의 긍정은 무지와 무식을 기반으로 한 착시현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늙은 시절의 비관과 우울함 역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세상이 더 나빠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시점이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언젠간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자연은 인간에게 ‘인지적 진통제’를 하나 우리 뇌에 심어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죽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공평을 조금이나마 잊게 하기 위해
자연은 늙어 가는 우리에게 세상이 점점 더 비관적이고 우울하게 보이는,
삶의 가치를 점점 디스카운트하는 착시현상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 가고, 죽는다.
먼 미래 브레인 업로딩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불사신이 등장하기 전까진
‘변치 않는 인간의 기본 조건(conditio humana)’ 중 하나이겠다.
그렇다면 젊음과 늙음의 미래는 무엇일까?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인류는 늙음을 최대한 지연하거나 사라지게 하려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 여든 살이 20년 전 예순 살이고, 오늘날 예순 살이 20년 전 마흔 살이라면,
20년 후 예순 살은 오늘날 열 살, 스무 살이지 않을까?
어른 같은 아이가 과거의 상징이라면,
미래는 다시 아이 같아지는 어른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어른이 되길 거부한 피터 팬같이, 미래 인류는 어른이 되길 거부하기에,
죽는 그 날까지 어린아이의 유치함과 무지를 유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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