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 먹는 얘기

마곡사

甘冥堂 2021. 2. 27. 13:42

태화산 마곡사

공주 유구 마곡사
천년고찰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
십승지.
김구 선생이 머물던 곳.

 

마곡사가 위치한 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등의 여러 비기(祕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설은 640(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普徹)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명종 2)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651(효종 2)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31본산(本山)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부속암자로는 심정암(深淨庵부용암(芙蓉庵북가섭암(北迦葉庵토굴암(土窟庵백련암(白蓮庵

영은암(靈隱庵대원암(大願庵은적암(隱寂庵) 등이 있다.

 

백범 명상길에서 내려다 본 마곡사 전경

 

안내 표시판

한문으로 쓰인 麻谷寺의 "谷"자가 특이하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교(極樂橋)를 사이에 두고 보물 제801호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과

보물 제800호인 공주 마곡사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802호로서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興聖樓), 해탈문, 천왕문, 16나한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應眞殿),

명부전이 있으며, 응진전 맞은편에는 요사채인 심검당(尋劍堂)자형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다.

 

또 영산전 옆에는 벽안당(碧眼堂)과 매화당(梅花堂)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염화당(拈花堂연화당(蓮華堂매화당(梅花堂) 등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가 매우 많다.

이들 건물 중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할만한 것이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대웅보전은 1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金生)의 글씨라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며,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대웅보전의 주련

 

보물 제801호인 대웅보전에 걸린 주련이다.

 

古佛未生前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凝然一相圓 의젓한 동그라미 하나

釋迦猶未會 석가도 알지 못한다 했으니

迦葉豈能傳 어찌 가섭이 전하리

本來非皂白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으니

無短亦無長 짧지도 또한 길지고 않도다.

 

 

凝然: (응연) 불변하는 모양.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단정하고 진중한 모양

皂白: [zàobái] (조백) 흑백. {비유} 시비(是非). 선악.

 

 

마곡사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69-1호로 지정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과 보물 제270호로 지정된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 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인 마곡사 동제 은입사향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마곡사 동종 등이 있다.

오층석탑은 풍마동다보탑(風磨洞多寶塔)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나

라마교 탑과 비슷하여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임진왜란 때 무너져 탑 안의 보물들이 도난당한 지 오래이나 1972년에 수리할 때 동제

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이 탑은 전 국민의 3일 기근을 막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한국·인도·중국 등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현재 이 절은 충청남도 70여 개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또한 이 절은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이 절은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히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天米將軍水)는 뛰어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산사.

마곡사를 비롯하여, 부석사.봉정사, 법주사, 통도사. 선암사, 대흥사 등 7개 사찰이다.

백범 명상길에 있는 백범 동상.

백범은 서산대사의 싯구를 자주 인용했다.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수작후인정 (遂作後人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여행, 사진. 먹는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신내 골목  (0) 2021.03.05
불광동 맛집  (0) 2021.03.04
남당항 새조개  (0) 2021.02.27
진수성찬  (0) 2021.02.14
평화누리길 (정리)  (0) 202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