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느끼며
朝起心知秋 (조기심지추)
天色如新雨 (천색여신우)
忽如遠行客 (홀여원행객)
頓轡臨長路 (돈비임장로)
不知家在處 (부지가재처)
仰見浮雲暮 (앙견부운모)
凉蟬號灌木 (량선호관목)
新蟲稍在戶 (신충초재호)
念此亦天機 (염차역천기)
時節各有慕 (시절각유모)
아침에 일어나니 가을임을 느끼는데
하늘빛은 비가 막 갠 것처럼 맑구나
문득 먼 길 떠나는 나그네는
고삐 잡고 긴 길 앞에 섰어라
고향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저물녘 뜬구름만 쳐다보노라
가을 맞은 매미는 떨기나무에서 울고
새로 나온 벌레는 조금씩 문에 보이네
이 또한 하늘의 운행임을 생각하니
이 시절에 저마다 그리워하리라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노촌집(老村集)』 권1 「감추(感秋)」 3수 신묘년(1711, 숙종37)
철옹성(鐵甕城) 같던 여름의 무더위도 이제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 때면 이제 가을이 왔나 싶다.
벌써 입추(立秋)가 지났고 며칠 있으면 처서(處暑)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당(唐)나라 대문호 한유(韓愈)는 그의 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사시(四時)의 대표적인 소리를 이렇게 말하였다.
“새로써 봄을 표현하고, 우레로 여름을 표현하며,
벌레로 가을을 표현하고, 바람으로 겨울을 표현한다.”
새, 우레, 벌레, 바람은 각 계절을 대표하는 소리이지만,
달리 보면 추운 겨울 끝자락에 새가 울면 봄이 왔음을 느끼고,
따뜻한 봄 끝자락에 우레가 치면 여름이 왔음을 느끼며,
무더운 여름 끝자락에 풀벌레가 울면 가을이 왔음을 느끼고,
서늘한 가을 끝자락에 찬 바람이 불면 겨울이 왔음을 느낀다는 말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여름이 끝나가는 저녁 무렵에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여치, 베짱이, 귀뚜라미 등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지는 해를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풀벌레 소리는 가을의 전령이었다.
지금도 근처 공원에 가면 풀벌레 소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이 시는 1711년(숙종37)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임상덕(林象德)이
2살 연하의 아우 임상악(林象岳)을 고향 집으로 떠나보내고 지은 것으로,
3수 가운데 첫 번째 시이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하늘이 맑게 개어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좋은 날 아우는 멀리 고향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렇게 아우를 떠나보내고 저녁이 되었는데,
고향 집은 아득하여 어디 있는지 몰라 그저 고향 쪽의 뜬구름만 하염없이 쳐다본다.
그때 가을을 맞은 매미는 자신의 계절이 감을 아쉬워하듯 나무에서 ‘맴맴’ 울어대고,
풀벌레는 날이 차가워짐을 느낀 듯 하나둘 대문까지 들어와 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이 계절에 저마다 그리워하리라.
이 시는 ‘하늘빛은 비가 막 갠 듯[天色如新雨]’,
‘가을 맞은 매미[凉蟬]’, ‘새로 나온 벌레[新蟲]’ 등의 시어로
가을이 왔음을 표현하였고,
‘먼 길 떠나는 나그네[遠行客]’, ‘긴 길에 앞에 서서[臨長路]’,
‘저마다 그리워하리라[各有慕]’ 등의 시어로
아우를 떠나보내는 서글픈 심정을 표현하였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이 붙어 있다.
“사시(四時)의 변화가 사람에게 참으로 크다.
군자(君子)는 이를 느껴 덕을 진취시키고 학업을 닦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런 것이 아니다. 출처(出處)가 정해지지 않음을 염려하고,
친척들이 대부분 앞길이 막힘을 서글퍼하는 것이다.
이번에 아우 성여(聖如 임상악)가 또 이별하고 돌아가기에,
개연(慨然)히 감회가 일어 잠시 나의 뜻을 서술한다.”
보통 군자는 계절이 바뀌면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를 생각하는데,
작자는 자신의 앞날이 불투명하고 친척들이 실의에 빠짐을 슬퍼한다고 하였다.
당시 작자는 29세로 헌납, 이조 좌랑, 부수찬 등 한창 출세의 길을 달리고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또 아우 임상악이 시험에 떨어진 듯하다.
그러므로 이 시는 계절이 바뀌면서 느끼는 감정에다
자신과 주변 사람의 처지까지 더해져 더욱 쓸쓸함을 자아낸다.
작자는 특히 계절의 변화에 민감했던 듯하다. 2, 3년 전에도 같은 제목의 시를 지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서글픈 감정은 같지만, 감회를 일으킨 이유는 다르다.
皇天無私運 (황천무사운) 하늘은 사사로이 운행하지 않고
日月代謝之 (일월대사지)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누나
念茲嘉木榮 (염자가목영) 생각건대 이 무성한 가목도
會見霜霰時 (회견상산시) 서리와 눈 내릴 때를 만나리라
商風颯以至 (상풍풍이지)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니
棗栗實離離 (율곡실리이)대추와 밤이 주렁주렁 열렸네
常恐百草死 (상공백초사) 늘 염려되는 건 풀이 다 시들어
使我心惻悲 (사아심측비) 내 마음 서글프게 하는 거라오
이 시는 3수 가운데 첫 번째 시이다. 세월의 변화 속에 초목이 말라 시들어가듯
사람도 늙어감을 슬퍼한 것이다.
이 시에도 해설이 붙어 있는데
“곁에는 좋은 벗이 없고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아,
뜻과 학업이 황폐해져 마흔에도 알려지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하늘의 운행은 특정인을 위해 더 빨리 가거나 천천히 가는 법이 없어서,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노년을 맞게 된다.
작자는 세월이 감을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노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가을바람 소리를 듣고 고독하고 적막한 인생의 늘그막을 떠올린
구양수(歐陽脩)의 〈추성부(秋聲賦)〉와 그 시상이 비슷하다.
또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후세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을 볼 때도 지금 우리가 옛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니, 슬프다.
[後之視今, 亦猶今之視昔, 悲夫!]”라고 한 말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사람마다 가을을 느끼는 것도 다르고, 가을이 와서 느끼는 감회도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맑은 하늘을 보고, 어떤 사람은 풀벌레 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은 선선한 바람과 공기를 맞고서,
어떤 사람은 산의 단풍을 보고 가을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지겹던 무더위가 가서 속이 후련한 사람도 있을 테고,
날씨가 선선해져 공부나 운동을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시인의 감수성을 장착한 사람도 있을 테고,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망함을 슬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늘의 운행은 쉼이 없어서 무더운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 소리도 듣기 좋은 이때,
집 앞 공원이나 가까운 풀밭 길을 걸으며
자신의 방식대로 가을을 느끼고 자신의 방식대로 가을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글쓴이 최이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