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정약용
窮居罕人事 恒日廢衣冠 (궁한 살림 찾는 이 없어 늘 옷을 벗고 사네.)
敗屋香娘墜 荒畦腐婢殘 (부서진 집 바퀴벌레 밭두둑엔 팥꽃 남아.)
睡因多病減 愁賴著書寬 (병이 많아 잠이 줄고, 책 쓰느라 근심 잊네.)
久雨何須苦 晴時也自歎 (오랜 비 괴롭잖네. 맑을 때도 탄식하니.)
강진 유배 네 해째 되던 1804년 여름,
긴 장마 속에 쓴 시다.
연일 비만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통에 맨머리 맨발로 지낸다.
3, 4구가 재미있다.
'향낭(香娘)'은 향기로운 아가씨가 아니라 바퀴벌레다.
'부비(腐婢)', 속 썩히는 계집종은 -
더 제대로 말하면 '썩을 년' 이겠지- 팥꽃의 이름이다.
중국 사람들은 모르고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표현이다.
병이 많아 잠이 자꾸 줄어든다.
깊은 밤 잠을 깨면 서울 생각,
두고 온 가족들, 알 수 없는 미래,
이런 것들이 천리 밖 유배객의 내면을 할퀴고 지나갔겠지.
근심을 잊으려 더욱 저서에 몰두한다.
장마비가 괴롭다고 투덜댈 것 없다.
틀어박혀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해 주지 않느냐.
맑은 날엔 이 사무치게 좋은 날
마음껏 다니지도 못하는 매인 몸을 원망했더니.
이런 말씀을 들으면
비 오면 비 온다 고 투덜대고,
날 맑으면 날 맑다고 투덜대는
투덜이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
큰 어른의 마음 씀은 늘 이러하시니,
어찌 우리가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출처 : 카페 '서비의 놀이마당'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