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찾는 방송 중에 남해안 바닷가의 어느 할머니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옛날 골동품이 쌓여 있는 헛간에서 먼지 수북한 물건들을 설명 하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눈을 아끼려고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었다.
작은 글씨나 자잘한 것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다.
"눈을 아낀다."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이 말이 계속 맘에 걸린다.
소위 천부론(天賦論)이라는 것을 이것에 대입해 볼수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늘로 부터 부여 받은 어떤 정해진 量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양, 숨을 쉴 수 있는 양,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양.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양.
심지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양 등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보고 듣고 말 할 수 있는 능력도 어떤 양이 이미 정해져 있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할머니의 말씀도 그런 뜻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평생을 볼 만큼 다 보았기에 이미 그 시력이 기진히니, 굳이 자잘한 것까지 살피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력을 소비할 까닭이 없다. 그런 뜻이 아닐런지.
예로부터 사람이 나이 들면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귀가 어둡고, 말이 어눌해 지는게 다 뜻이 있다고 했다.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보았으니 이제 웬만한 것은 보아도 못 본척 넘어가고, 들어도 못 들은체 넘어가고, 참견할 일이 있어도 그저 적당히 모르는체, 잔소리 하지 말고 넘어가라는 하늘의 뜻이다.
다음 세대인 젊은이들에게 맡기라는 뜻이다. 선인들은 이미 이 천부론의 이치를 꿰뚫어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같은 천부론은 서양의 '자주 사용하는 장기는 진화하고 덜 사용하는 장기는 퇴화한다' 는 프랑스의 박물학자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用不用說)로는 해석할 길이 없다. 서로 상충되는 것이다. 눈이나 귀, 입도 쓰면 쓸수록 더 진화하여야 하는데 어디 그렇게 되는가?
가끔 술자리에서 이 천부론을 소재로하여 우스개 소리를 하곤 하였는데, 이젠 그런 농담은 삼가해야 할 것만 같다. 함부로 써 버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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