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병든 시인

甘冥堂 2021. 1. 7. 10:18

"날마다 괴로워하지 않는 시인은 병든 시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글은 우리시대의 위대한 지성 이어령 님에 관한 글이다.

 

 

암 투병 중인 노()학자가

마루에 쪼그려 앉아 발톱을 깎다가

눈물 한 방울을 툭, 떨어뜨렸다.

멍들고 이지러져 사라지다시피 한 새끼발톱,

그 가여운 발가락을 보고 있자니 회한이 밀려왔다.

 

이 무겁고 미련한 몸뚱이를 짊어지고

80년을 달려오느라 니가 얼마나 힘들었느냐.

나는 왜 이제야 너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냐.”

 

 

햇볕 내리쬐던 가을날,

노인은 집 뜨락에 날아든 참새를 보았다.

어릴 적 동네 개구쟁이들과

쇠꼬챙이로 꿰어 구워 먹던 참새였다.

이 작은 생명을,

한 폭의 날아다니는 수묵화와도 같은

저 어여쁜 새를 뜨거운 불에 구워 먹었다니···.

종종걸음 치는 새를 눈길로 좇던 노인은

종이에 연필로 참새를 그렸다.

그리고 썼다.

 

시든 잔디밭, 날아든 참새를 보고,

눈물 한방울.’

 

 

 

마지막 수술을 하고 병상에 누웠을 때

이어령은 작은 스케치북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참새 한 마리를 보고,

발톱을 깎다가,

코 푼 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지다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 소회를

짧은 글로 적고 간혹 그림도 그렸다.

췌장암 투병 중 올해 미수를 맞은 이어령은

"어떤 고통이 와도 글을 쓰고 싶다.

그 의지가 나를 살게 할 것"이라고 했다.

 

 

 

죽음이 목전에 와도 글을 쓰겠다

 

췌장암 투병 중인 이어령(88) 선생을 만난 건 지난 10월 말이다.

몰라보게 수척해 있었다. 체중이 50대로 내려왔다고 했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집필에 몰두해온 그는

살아갈 날, 아니 견딜 수 있는 날들이 6개월에서 3개월,

다시 1개월로 줄어들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최근 분신과 다름없던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의 문을 닫았다.

 

1주일에 한 번 기() 치료만 받는다는 그가

심심할 때마다 병상에서 끄적였다는 낙서장을 가져왔다.

시 같고 짧은 산문 같은 글들이 거기 있었다.

 

일기 쓰듯 매일 낙서를 하다

 

눈물 한 방울

 

늙으니 춤을 출 수 있나,

남을 대신해 노동을 할 수 있나.

늙고 병든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회한의 눈물 담긴 시() 한 줄뿐이더군요.”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어요.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눈물, 즉 박애(fraternity)예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해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어요.

 

대한민국만 해도 적폐 청산으로, 전염병으로, 남북 문제로 나라가 엉망이 됐지만

독재를 이기는 건 주먹이 아니라 보자기였듯이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절실합니다.”

 

(출처: 이어령 "눈물로 쓴  지상에서의 내 마지막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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