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새우젓 냄새가 풀풀 나는 할머니가 노인석에 앉더니 내게 말을 건다.
이 차 타면 종로 5가 갈 수 있나요?
5가에서 나무를 샀는데 돈이 모자라 배달해 주는 아저씨에게 5만 원을 줬는데.
아 글쎄. 왜 나무값을 안 주느냐고 전화가 왔지 뭐야요.
그 때문에 5가에 있는 나무 파는 가게에 가는 중이에요.
이런 사연에 이어서
천안 독립기념관 근처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서울로 이사와
갖은 고생 끝에 아들을 K대 보내고
두 딸은 ㅇㅇ여상을 보내 잘 키웠어요.
그 손주도 이번에 행정고시에 합격했어요.
자식 키운 보람이 있어요.
아 참. 영감은 공무원이었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다가 일찍 죽었어요.
술 많이 잡숫지 마세요.
종로 3가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타고 종로 5가에 내릴 동안 이 할머니의 얘기는 계속됐다.
5가에서 헤어지면서도 "술 많이 잡숫지 마세요." 당부를 하며...
드디어 헤어졌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이렇게 까지 수다를 떨어야 하나?
끝까지 경청한 나 자신도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후
친구들 모임에서 본의 아니게 술을 많이 마셨다.
대낮부터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마시노?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할머니가 당부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남편을 술 때문에 잃은 할매의 심정을 어스러이 짐작한다.
술 취해 좀체 하지 않던 口羅까지 푼다.
내 88 米壽에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잔치를 할 거야.
그 자리에 김연자를 초청해서 '아모르파티'를 부르게 할게.
그때 만나자구...
이래서 그 할매가
"술 많이 잡숫지 마라." 하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