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襄邑道中》
陳與義
양읍으로 가는 도중에
飛花兩岸照船紅 (비화양안조선홍) 양쪽 언덕에 꽃이 날려 배를 붉게 비치는데
百里楡堤半日風 (백리유제반일풍) 백리 누릅나무 둑에 한나절 바람이 부네.
臥看滿天云不動 (와간만천운부동) 누워서 하늘을 보니 구름은 움직이지 않는데
不知云與我俱東 (부지운여아구동) 구름이 나와 더불어 동쪽으로 가는 것을 몰랐네.
▶陳與義: (1090년 ~ 1138)
자가 거비(去非), 호는 간재(簡齋)이다.
낙양 사람으로 24살 때 진사에 급제한 뒤, 북송 때에 개덕부교수(開德符敎授) 등을 지냈고,
남송 때에는 중서사인(中書舍人), 예부시랑(禮部侍郞),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남·북송 교체 시기의 중요한 시인이었다.
남도(南渡) 이전의 시풍은 명쾌하고 발랄하였지만, 남도 이후에는 두보를 배우고 아울러 소식, 황정견을 존중하였다.
초기시의 소재는 일상생활의 정취, 산수 등을 즐겨 썼으나,
정강(靖康)의 난 이후에는 스스로 겪었던 어지러운 사회생활의 비참한 경험 등이 시에 잘 반영되고 있어서,
후기 시풍은 전기의 청아함에서 비장함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진여의 등을 거쳐 남송 중기에 이르러서는,
'남송4대가(南宋四大家)'로 일컫는 육유(陸游), 양만리(楊萬里), 범성대(范成大), 우무(尤袤) 등이
강서시풍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격식의 시를 지었다.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다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