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萬里
江風索我吟 (강풍삭아음) 강바람은 날더러 시 지으라 하고
山月喚我飮 (산월환아음) 산위에 뜬 달은 날 불러 술마시게 하는도다.
醉倒落花前 (취도락화전) 취하여 떨어진 꽃 위로 거꾸러지니
天地爲衾枕 (천지위금침) 천지가 바로 이부자리로구나.
강바람 솔솔 불어와 시심을 붇돋우고,
산 위에 뜬 달은 내게 거나한 주흥을 부추긴다.
강바람 산 달에 주흥이 도도하니
시 읊다 취한 술에 진 꽃잎 위로 아예 드러눕는다.
꽃잎 깔린 대지는 향기로운 요가 되고,
달빛 밝은 저 하늘은 비단의 이불이라.
건곤일척에 不知老之將至로다.
늙음이 장차 오는 것도 모르겠네.
言志 / 이수광
天地大衾褥 (천지대금욕) 천지는 커다란 이부자리요
江河一酒池 (강하일주지) 강하는 하나의 술 연못일세.
願成千日醉 (원성천일취) 천 날을 깨지 말고 취하여보자
眠過太平時 (면과태평시) 꿈속에 태평시절 지나쳐보자.
천지를 이부자리로 깔고 덮으니,
드넓은 강물이 그대로 술이로구나.
그 술을 천일 동안 마시어 보자.
취하거든 깨지 말고 잠을 자리라.
그 사이에 인간 세상에는
태평성대의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으면 하는 것이다.
이렇듯 술은 가슴 속 깊은 시름을 녹여주는 묘약이 된다.
술과 바람과 詩
謝天維[사천유] / 玉峯白光勳[옥봉 백광훈]
천유에게 일러주다
漉酒待君來 (녹주대군래) 술을 걸러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며
橫琴惜餘景 (횡금석여경) 거문고 빗겨 들고 봄볕 아까와.
溪流流向君 (계류류향군) 시냇물도 그댈 향해 흘러가누나
一路春松影 (일로춘송영) 길 따라 솔 그림자 늘어섰구나.
병들어 누운 친구를 그리며 지은 시다.
동지섣달에 담근 술 항아리에서
굼실 풍겨나는 누룩의 향내.
진작에 탁주를 잘 걸러 놓고
그대가 자리 털고 일어나
나를 찾아 주길 기다리고 있다.
거문고를 빗겨 들고 한 곡조 타는 뜻은
남은 볕이 아쉽고 아까운 때문이다.
그대에게 향하는 나의 이 마음,
시냇물도 내 안 같아서 흘러흘러 흘러가고,
그 길 따라 솔 그림자가 줄줄이 늘이었다.
이 솔의 푸르름 닮아 그대 빨리 쾌차 하소.
따뜻이 손을 잡고 술 한 잔 나눕시다.
尹而性有約不來獨飮數器戱作俳諧句
(윤이성유약불래독음수기희작배해구)
술을 만나 벗을 생각하며 / 석주 권필
逢人覓酒酒難致 (봉인멱주주난치) 벗 만나 술 찾으면 술이 없고
對酒懷人人不來 (대주회인인불래) 술 두고 님 그리면 님이 오질 않네.
百年身事每如此 (백년신사모여차) 한평생 이 내 일이 매양 이리 엇갈리니
大笑獨傾三四杯 (대소독경삼사배) 허허허 크게 웃고는 혼자 거푸 서너 잔.
함께 술 마시기로 약속한 친구가 오지 않자,
무료히 앉았다가 속이 상해 혼자 술 마시며 지은 시다.
벗이 있고 술이 있다고 해서 그 자리가 늘 유쾌할 수도 없다.
벗은 마음에 맞는 벗이라야 벗이랄 것이요,
술은 즐거워 마시는 술이라야 술이랄 것이다.
시를 지은 이유가 친구 윤이성이 약속을 하고 찾아오지 않자
혼자 술을 마시면서 장난스럽게 희롱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곳 픠면 달 생각하고 / 李鼎輔
곳 픠면 달 생각하고 달 밝음연 술 생각하고
곳 픠쟈 달 밝쟈 술 엇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곳 알래 벗 달이고 翫月長醉하련요
出典<校注海東歌謠 369>
엇으면 ; 얻으면
알래 ; 아래
완월장취翫月長醉 ; 달을 데리고 놀며 술에 오래도록 취함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玩月長醉(완월장취) 하려뇨
꽃구경은 달빛 아래서 해야 제격이고,
술은 꽃 아래서 달빛 보며 마셔야 제 맛이 난다.
맛진 술이 있어도 벗이 없대서야 무슨 맛이 나겠는가.
어여쁜 꽃과 흔흔한 달빛,
매운 누룩으로 담근 술에 싫증나지 않는 벗.
꽃향기에 취하고 달빛에 취하고,
누룩에 취하고 우정에 취하니
이 취기는 영영 깨지 않아도 좋을 법하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청영(靑詠)
술이 취하거든 깨지 말게 삼기거나
님을 만나거든 이별 업게 삼기거나
술 깨고 님 이별하니 그를 슬허 하노라
취하거든 깨지를 말고,
만났거든 이별을 모르고 지낼 일이다.
취한 술은 쉬이 깨고 좋은 님은 쉬 떠나니,
인생에 무슨 이런 장난이 있단 말인가?
술 깬 뒤 님 떠난 빈자리를 더듬는 슬픔에
인생의 시름만 깊어 간다.
병가(甁歌) / 신흠(申欽)
술이 몃가지오 청주와 탁주로다
먹고 취할션졍 청탁이 관겨하랴
달 밝고 청풍헌 밤이어니 아니 깬들 엇더리.
술 먹는 이가 청탁을 가릴쏘냐
맑은 술이면 맑은 술, 탁주면 탁주
취하면 됐지 청탁이 무슨 소용인가.
달 밝고 시원한 바람 부니
그대로 잠들어 깨지 않은들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