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아무 생각없이 이 영화를 보다가,
마무리로 갈수록 왠지 모르게 죄스런 생각이 들어,
급기야는 회한의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이것이 내가 살아온 세월의 한 장면이었나?
그때, 1987년에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나?
돌이켜보니 월급쟁이로 먹고 사는 데 바빠
매일 계속되는 데모와 최류탄 가스를
그게 그런 것이겠거니 일상의 일로 여기며 지냈다.
물론 신문 지상을 통해, 또는 시청앞 광장이나 광화문 등지에서 벌어지는 대강의 일들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영화에서와 같은 장면은 상상도 못했었다.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
최류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군...
다만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박종철 군.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한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게 불법으로 강제 연행됐다.
주요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했다.
결국,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로 사망했다.
경찰은 박종철 사망 원인에 대한 은폐를 시도했다.
경찰이 책상을 세게 '탁'치자 박종철이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내며 사망했다는 것이다.
시신 부검을 마친 황적준 박사는 사인을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했다.
이한열 군
연세대학교 재학중이던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 시위에 참여했다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었다.
그의 죽음은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군정종식의 계기가 된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이것이 내가 살았던 1987년 그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무얼했나?
태극기 한 번 흔들어 봤나,
데모에 참여해 애국가 한 번 불러봤나,
전경대에 맞서 벽돌이라도 한 번 던져 봤나?
아니면 유치장에라도 한 번 가 봤나?
다만 넥타이 부대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최류가스를 피해 다녔을 뿐이었다.
아, 부끄럽다.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으면서
그 순간을 피해 다녔을 뿐.
조국의 민주화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으니..
세월이 흘러
뒷방에 앉아 世流만 탓하고 있는 자신이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아, 1987년.
아무 생각없이 이 영화를 보다가,
마무리로 갈수록 왠지 모르게 죄스런 생각이 들어,
급기야는 회한의 술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이것이 내가 살아온 세월의 한 장면이었나?
그때, 1987년에 나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나?
돌이켜보니 월급쟁이로 먹고 사는 데 바빠
매일 계속되는 데모와 최류탄 가스를
그게 그런 것이겠거니 일상의 일로 여기며 지냈다.
물론 신문 지상을 통해, 또는 시청앞 광장이나 광화문 등지에서 벌어지는 대강의 일들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영화에서와 같은 장면은 상상도 못했었다.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
최류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군...
다만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박종철 군.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한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게 불법으로 강제 연행됐다.
주요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했다.
결국,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로 사망했다.
경찰은 박종철 사망 원인에 대한 은폐를 시도했다.
경찰이 책상을 세게 '탁'치자 박종철이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내며 사망했다는 것이다.
시신 부검을 마친 황적준 박사는 사인을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단했다.
이한열 군
연세대학교 재학중이던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 앞 시위에 참여했다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었다.
그의 죽음은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군정종식의 계기가 된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이것이 내가 살았던 1987년 그 시절이었다.
나는 그때 무얼했나?
태극기 한 번 흔들어 봤나,
데모에 참여해 애국가 한 번 불러봤나,
전경대에 맞서 벽돌이라도 한 번 던져 봤나?
아니면 유치장에라도 한 번 가 봤나?
다만 넥타이 부대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최류가스를 피해 다녔을 뿐이었다.
아, 부끄럽다.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으면서
그 순간을 피해 다녔을 뿐.
조국의 민주화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으니..
세월이 흘러
뒷방에 앉아 世流만 탓하고 있는 자신이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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