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八餘, 八不足 그리고 五欠

甘冥堂 2021. 2. 20. 10:05

1519년 서른네 살 김정국(金正國)은


기묘사화(己卯士禍, 조선 시대 1519(중종 14)년 11월에 일어난 사화) 때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자리에서 쫓겨나

시골로 낙향을 해 고향에 정자를 짓고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라 부르며 지냈다.

 

김정국(金正國)의 친구가 녹봉(祿俸)도 없던 김정국에게

그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팔여(八餘)라는 아호(雅號)를 지은 연유를 묻자,

김정국이 대답하기를,

 

토란국에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八餘)라 하였네.

이 모두가 자연이 주는 넉넉함이 아닌가!

 

金正國의 말을 들은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하였다.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방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 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매일 맡고도 부족하고,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늘 근심하고 걱정한다네.

이 모두가 인간이 갖는 탐욕(貪欲)이 아니던가!

 

 

한편 이글을 읽던 북한산 오흠처사가

다섯가지로 하품이 난다는 오흠(五欠)으로 화답한다.

 

시원치 않은 몰골에 하품 나고

엉뚱한 생구라나 풀어대니 하품 나고

남의 글이나 베껴 쓰니 하품 나고

머리가 짧아 사리분별을 못하니 하품 나는데

 

한 가지 더, 이 네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덕은 쌓지 아니하고 하품이나 해 쌓으니 오흠(五欠)이 아니던가?

 

(): 하품하다. 부족하다. 모자라다.

 

 

이런 식의 호는 북송시대에도 있었다.

歐陽修(1007 ~ 1072)는

길주(吉州) 영풍(永豐)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북송(北宋)시대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활동했고, 벼슬은 한림학사(翰林學士), 추밀부사(樞密副使),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했다

 

六一居士

장서 1만권, 금서문집록 1천권. 거문고 하나, 바둑판 1개가 있으며 항상 술 1병이 있다.

내가 이 다섯 가지 물건 속에서 늙은이 나 하나를 합하면 여섯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六一居士다.

 

멋진 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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