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泰鳳樓(태봉루)

甘冥堂 2022. 10. 27. 14:32

여주의 어느 단독주택이
얼듯 보기에 카페같이 보였다.
잔디 정원을 지나니 담벼락에 '留恩齋(유은재)'이라는 작고 아담한 현판이 붙어 있었다.
마침 주인이 있어 그 의미를 물었다.

70대 초반의 주인은 은퇴 후 이곳에 집을 지었다.
이 땅 옆에 구옥이 있는데 어머니가 홀로 살고 계신다고 한다.

새집을 지어놓고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나,
옛 토담집에 정이들어 그 집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단다.
한 옛날 고생 고생하며 지은 집이니 얼마나 애착이 가겠는가?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모의 은혜가 머믄 집'이라는 의미로
새로 지은 이 집을 '留恩齋'라 했노라 설명한다.


새 집이 아무리 좋아도
못 먹고 못 살 때 겨우겨우 장만한 토담집만 하겠는가?
그 좁은 집에서 시부모 모시고 아이들 기르며 어렵게 살았던 추억 어린 둥지.
그 집을 차마 떠나기 싫어,
머물다 저 세상으로 떠날 때까지 살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요즘
새로 집을 지으려고 설계 중이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서울 수복 후, 온 동네분들이 힘을 합해 지은 30여 평 기와집.
세월의 무게에 눌려
낡고 허물어지고 있으니 다른 방도가 없다.

지경 다질 때,
3~4살 어린나이임에도 횃불 들고 뛰어다니던 기억이 새로운데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런 집을 철거하려니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다.

내년 여름. 새 집 완공되면
3층 내가 머물 방 외벽에
나도 부모님을 그리는 현판 하나를 걸어야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피땀이 어린 곳.
이곳에 태봉루(泰鳳樓)
현판을 걸리라.

비록 명필은 아니지만 내 있는 정성을 다해
자필로 쓰고 직접 나무판을 다듬어서 벽에 걸리라.



泰鳳樓.
무슨 의미인가?
큰 봉황이 깃든 누각.
부모님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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