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선인들의 술마시는 습관

甘冥堂 2022. 11. 5. 23:55


선인들의 술마시는 습관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편(交友篇)에 보면
“술 마시고 밥 먹는 자리에서는 형님, 동생 하는 사람이 천 명이나 되더니만,
위급하고 어려운 일이 닥치고 보니 참다운 벗은 한 명도 찾아 볼 수 없구나.”
酒食兄弟千個有 (주식형제천개유)
急難之朋一個無 (급난지붕일개무)
라는 말이 나온다.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 이면에는 또 혼자서 즐기는 풍미도 있다.
홀로 초당에 앉아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시를 읊조리거나
술 한잔으로 은근한 흥취를 돋우는 조촐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이규보의 詩「적의 適意」에서

혼자 즐기는 이 느낌은 절제로 얻은 자유의 세계이며
현실을 초월하여 즐기는 관념의 공간이다.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홀로 잔들어 자주 마시니
거문고 소리는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
술 또한 내 입을 거스리지 않네
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건가
또한 함께 술 마실 벗 기다릴 것도 없구료
뜻에만 맞으면 즐겁다는 말
이 말을 나는 가져 보려네

獨坐自彈琴 (독좌자탄금)
獨飮頻擧酒 (독음빈거주)
旣不負吾耳 (기불부오이)
又不負吾口 (우불부오구)
何須待知音 (하수대지음)
亦莫須飮友 (역막수음우)
適意則爲歡 (적의즉위환)
此言吾必取 (차언오필취)

한림별곡 제4장에서는 좋은 술의 종류를 열거하고
그 술을 좋은 잔에 부어 권하는 경(景)과
유령(劉伶)과 도잠(陶潛)이 취한 경(景)이 어떠하냐고 노래하였다.

“황금빛 도는 술, 잣으로 빚은 술, 솔잎으로 빚은 술, 그리고 단술,
댓잎으로 빚은 술, 배꽃 필 무렵 빚은 술, 오갈피로 담근 술,
앵무새 부리 모양의 자개껍질로 된 앵무잔과,
호박빛 도는 호박배에 술을 가득 부어,
권하여 올리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진나라 죽림칠현의 한 분인 유령과 도잠이야 두 분 신선같은 늙은이로,
아! 거나하게 취한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주제는 귀족들의 향락적 생활을 표현하였다.
경치 좋은 정자에 둘러 앉아 갖가지 고급 술을 한 잔씩 하면서 시(詩)를 짓고,
기생도 불러서 악기도 연주하게 하는 상류층의 향략적 酒興을 즐기는 한림별곡」과

동시대의 노래인 「자하동」은 고려 말의 시중(侍中) 채홍철(蔡洪哲)이 지은 노래인데,

그는 자하동에서 살면서 집 이름을 ‘중화(中和)’라고 정하고
매일 원로(元老)들을 맞아 노래가락에 취해 술마시며 즐긴다.

노래의 내용은 중화당에 모인 원로들에게 술을 취하도록 권하고
태평년( 太平年 ), 만년환 (萬年歡)과 같은 당악을 연주하여 원로들의 노년을 위로하는 것인데,
채홍철은 여기에서 자하동의 풍류가 봉래산 선인들의 풍류보다 낫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시서(詩書)의 풍류보다 금주(琴酒)의 풍류를 더 강조하고 있다.

“인생에는 술 항아리 앞보다 좋은 것이 없고
인생 백년을 보내는 데 술만한 것이 없으니
술잔이 돌아가거든 남기지 마시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황(李滉)과 같은 도학자들도 풍류를 그의 시에 그려 놓았다.
「도산 12곡」 중 넷째 곡인데,
술마시면서 뱃놀이 하는 중에
거문고 타고 즐기니 무한지경에 이르렀노라는 내용이다

"창강(滄江)에 달이뜨니 야색이 더욱 좋다.
사공이 노를 젓고 동자는 술을 부어
상류에 매인 배를 하류에 띄어놓고
초경에 먹은 술이 삼경에 대취하니
주흥(酒興)은 도도하고 풍류는 완완(薍薍)이로다.
그제야 곧추앉아 요금(瑤琴)을 빗겨안고
냉냉한 옛곡조를 주줄이 골라내어
청량한 육륙가(六六歌)를 어부사(漁父詞)로 화답하니
이리 좋은 무한경을 도화 백구 너 알소냐.”

율곡이 “술을 줄이고, 말을 삼가“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술 때문에 실수도 많았고,

조선 실학자 이덕무는 선비들을 위하여 만든 수양서 ‘사소절’에서
“훌륭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착한 마음을 드러내고,
조급한 사람은 술에 취하면 사나운 기운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려서는 안되며,
또 술은 빨리 마셔도 안 되고,
혀로 입술을 빨아서도 안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실학자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먹지 말고
혀로 술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 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라고 썼다.

<사기>의 ‘백이전’을 11만3000번을 읽은 책중독자, 조선 중기의 백곡 김득신은 조선 최고의 다독가였고,
39세에 사마시, 그리고 59세의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노력하는 범재의 표본이었다.
그가 남긴 문집에 ‘사기술잔이야기(沙盃說)’이라는 글이 있다.

술을 즐겼던 백곡에게 친구가 도자기 술잔을 하나 주었는데, 애지중지하며 술을 마실 때 사용했으나
아들의 관리 소홀로 깨뜨려지고,
서울에 올라와 친구 집에서 좋은 술잔을 보고
술김에 참지 못하고 옷소매에 넣어 가져왔는데
이것도 계집종의 실수로 깨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선물 받은 술잔을 아예 집안 식솔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고 관리하고 있다며
생일을 맞아 그 술잔에 술을 마시니 기쁘기 한량없다는 것이 글의 요지다.

‘그리고 굳이 놋그릇으로 된 술잔을 쓰지 않고
도자 술잔을 쓰는 이유를 백곡은
술맛이 한결같아서라고 말한다.

그의 독서에 대한 이력만큼 술잔에 대한 애착도 대단해 보인다.

(카카오스토리 천지인에서 옮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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