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작소구거(鵲巢鳩居)

甘冥堂 2024. 8. 4. 17:44

작소구거(鵲巢鳩居) - 까치둥지에 비둘기가 살다, 남의 물건이나 지위를 차지하다.

평화를 상징하는 새 비둘기는 온순하여 길들이기 쉽다.
傳書鳩(전서구)라는 말대로 귀소성을 이용한 통신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의외로 멍청하고 얌체 짓을 한다고 여겨 비둘기가 나오는 속담마다 부정적인 것이 많다.
욕심에 다른 볼일은 보지 못한다고 ‘비둘기는 몸은 밖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나
실력이 미덥지 못하다고 ‘하룻비둘기 재를 못 넘는다’고 했다.

여기에 남의 집에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한다고 ‘까치집에 비둘기 들어 있다’며 양심불량으로 치부했다.
이 말을 그대로 번역한 듯한 까치 보금자리(鵲巢)를 버젓이 차지하여 비둘기가 산다(鳩居)는 이 성어다.

가장 오래된 중국의 시집 ‘詩經(시경)’은 약 3000년 전부터 전해지던 것을
孔子(공자)가 직접 정리하여 三經(삼경)에도 五經(오경)에도 첫머리를 차지한다.
國風(국풍), 小雅(소아), 大雅(대아), 頌(송)의 네 부분으로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 첫머리가 열다섯 나라의 민요들이 수록된 국풍인데
까치와 비둘기 이야기는 그 안의 召南(소남)에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의 쓰임은 오늘날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까치집은 남편의 집이고 비둘기는 시집가는 여인을 나타내 결혼을 축하해주는 노래였다.

제목도 까치집인 ‘鵲巢(작소)’의 내용을 보자. 글자 한 자씩 바뀌면서 세 번 이어진다.

 

‘까치가 둥지 지으니 비둘기가 와서 사네, 저 아가씨 시집갈 때 많은 수레 마중하네
(維鵲有巢 維鳩居之 之子于歸 百兩御之/ 유작유소 유구거지 지자우귀 백량어지),
까치가 둥지 지으니 비둘기가 차지하네, 저 아가씨 시집갈 때 많은 수레 전송하네
(維鵲有巢 維鳩方之 之子于歸 百兩將之/ 유작유소 유구방지 지자우귀 백량장지),
까치가 둥지 지으니 비둘기가 가득 차네, 저 아가씨 시집갈 때 많은 수레로 예를 갖추네
(維鵲有巢 維鳩盈之 之子于歸 百兩成之/ 유작유소 유구영지 지자우귀 백량성지).’

옛날 사람들은 비둘기는 집을 짓지 않고 다른 새가 지어놓은 둥지를 가로채서 산다고 믿었다.
다 지어 놓은 까치집에 비둘기가 들어가 사는 것은 훌륭한 집안으로 시집가는 신부를 상징했다.

신부가 시집가는 것을 축하해 주던 말이 너무나 다르게 신랑 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변했다.
신혼집을 꾸미고 신랑을 돕는 것이 신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면 맥이 닿는다.

하지만 결혼관계를 제외하고 남의 물건이나 또는
애써 이룩한 공적을 슬며시 차지하는 것은 얌체를 넘어 범죄다.
이런 행위를 저지르는 자는 곳곳에서 활개 친다.

제공 :안병화(前언론인,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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