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쓰고 있다는 분이 책의 제목을 무어라 할까 고심 중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냄비받침 '으로 하는 게 어떠냐 하니
맘에 드는 제목이라며 좋아한다.
힘들게 책을 지어도 제대로 읽어 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랴.
몇 페이지 읽다가 그냥 내던져 버리거나,
'냄비받침'으로 쓰거나,
아니면 그냥 책꽂이 깊숙한 곳에 처박힐 게 뻔하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속도 모르고 책의 제목으로 좋다 하니 어이가 없다.
다른 제목으로 하나 더 추천해 달라기에
'屋漏痕(옥루흔)'은 어떠냐?
낡은 집에 물이 새어 벽을 타고 내릴 때
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주름을 내며 마디를 이루고 흐르듯이
運筆 (운필)하라는 서예 용어다.
이런 용어가 자서전의 제목에 어울리겠냐마는
허나 그분은 그것도 좋다고 한다.
굳이 서예용어가 아니더라도 흐르는 느낌이 우리네 인생사 같으니 그럴듯하다고 느꼈나 보다.
남의 얘기할 때가 아니다.
며칠 전 작품 하나를 끝내고 나니 시원함보다는 계면쩍은 느낌이 든다.
그것도 책이라고.
남의 글을 이리저리 엮어 놓고 마치 자기 글인양 으스대는 게 멋쩍을 뿐이다.
짐작하시겠지만,
책의 제목이 口耳之學. 類說이니
그 내용이 뻔할 게 아닌가?
그렇더라도 이 책을 읽는 게 헛된 시간낭비가 안되게끔 나름 열정을 쏟았으니
그 점만이라도 인정해 주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글을 그대로 책의 끝맺음으로 하겠다고?
그럼 그렇게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