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안녕 전국노래자랑

甘冥堂 2022. 6. 9. 15:21

"전국~ 노래자랑!"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한없이 외친 주인공,
송해 선생이 향년 9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1927년 4월 황해도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굵직한 역사를
직접 삶으로 살아내 '살아있는 근현대사'라고도 불린 송해 선생은
유난히 가슴 아픈 이별을 끊임없이 겪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1남 2녀 자녀 중 하나뿐인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당시 21살이었던 아들은 6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아버지 송해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사고로 자식을 잃게 되면서
방송 활동을 중단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1988년, 아픔을 딛고 재개한 프로그램이
바로 KBS '전국노래자랑'입니다.

매주 일요일 시민들과 만나 웃고 울며 보낸
34년이란 시간은 송해 선생을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국민 MC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95세가 되던 2022년 1월,
송해 선생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이 '땡'과 '딩동댕' 중에서
뭐가 더 소중하냐고 하는데,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몰라요."

말이 끝난 뒤 송해 선생은 자신의 인생을 담은 노래
'내 인생 딩동댕'을 불렀습니다.

"눈도 맞고 비도 맞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네
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

인생은 내 마음대로 흐르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혹시 '땡'을 받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다음에 '딩동댕'을 받으면 됩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을 찾았다.

고인의 사무실(원로연예인 상록회) 앞의 선생 흉상 주위에는 20여 개가 넘는 조화가 놓여 있다.

주변 식당 주인이 보낸 조화가 가장 많다. 고인이 점심, 저녁 식사를 위해 자주 찾던 곳이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도 낙원동에 나와 된장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자택(강남구 도곡동)으로 퇴근했다고 한다.

고인은 다음날(8일) 아침 욕실에서 쓰러져 119 구급차가 출동했으나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100세에도 마이크를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고인은 95세까지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을 누린 셈이다.

호적 나이는 1927년생이지만 실제 나이는 97세(1925년)라고 고인이 생전에 방송에서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2018년 부인(고 석옥이·1934~2018)과 함께 폐렴으로 입원했으나

본인만 퇴원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송해 선생은 올해 유난히 수척해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월에 한 차례 입원했고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된 뒤 회복했다.

하지만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았다.

긴 시간 진행되는 전국노래자랑 야외 녹화의 MC를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송해 선생이 우리나라 대중문화 발전에 끼친 공로도 크지만

늘 서민과 호흡을 같이 한 '스타'였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니며 승객들과 대화를 즐기며 방송 아이디어도 얻었다.

조금만 유명해져도 비싼 외제차를 타고 급기야 음주운전으로 사라지는 젊은 연예인들이 많은 시대에

고인의 생활방식은 남달랐다.

 

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건강도 챙겼다.

그래서 유명해 진 것이 이른바 'BMW'(Bus, Metro, Walking)다.

매일 아침, 저녁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다리의 근력을 키웠다.

오후 4시쯤이면 낙원동 동네 목욕탕에서 온탕, 냉탕을 반복하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전국노래자랑 지방 녹화 때도 동네 목욕탕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하며 방송 준비를 했다.

 

고인은 비싼 헬스클럽 회원권 한 장 없이 건강수명을 다졌다.

그의 건강비결 또 한 가지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는 점이다.

노인의 고독은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낙원동에 나와 상인들과 대화를 즐겼고 지하철 안에서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부인이 별세한 후에는 주말에도 나와 실버극장(옛 허리우드극장)에서 노인들을 위해 노래 봉사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95세까지 건강수명을 누렸다는 점이다.

송해 선생은 장기간 입원한 적이 없고 평생 몸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매일 반복하던 'BMW'와 사회활동이 고인의 건강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

나이든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본인이 건강한 것이다.

간병 부담으로 자녀들의 삶이 찌들 염려도 없다.

 

나이 들어 내 자식에게 간병 부담을 지울까 두렵다.

오늘도 송해 선생님을 생각하며 나도 'BMW'를 실천한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 빈다. "선생님 때문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김용 기자 (ecok@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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