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백악산~관악산 축은 중심축

甘冥堂 2022. 6. 10. 08:36

땅의 팔자 또는 운명

 

청와대 이전 얘기가 나오며 풍수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청와대가 흉지라는 얘기는 1992년 노태우 정부 때

최장조 전 교수의 기고문에서 비롯했다.

 

청와대 자리가 서울 임자 되는 산의 중턱에 자리 잡음으로서 풍수가 금기시하는 성역을 차지하게 되어

살아있는 사람이 터전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신적 권위를 가진 자리가 되었고

또한 적어도 청와대는 풍수상 죽은 사람 혹은 신 같은 존재만이 살 수 있는 땅이므르 옮겨가야 한다

(동아일보 1992729일자 칼럼)

2019년 유홍준 교수도 문재인 정부 시절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할 적에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최근 청와대를 둘러본 풍수전문가 김두규 교수는 생각이 다르다.

 

“(논란이 많지만)청와대 일대는 길지라고 보는 것이 맞다. 청와대에 들어서면서 받은 첫 느낌이 포근함인데,

이는 좋은 땅의 기본 조건이다. 청와대 터를 완전한 길지라고 보기도 어렵겠지만,

1000년 동안 각 시대마다 한 국가의 근간으로 삼으려 했던 점만 봐도 흉지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기가 쇠했다는 말도 있지만 땅이 기운을 잃었다면 이렇게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겠나.

꾸준히 청와대 터 바위 지형의 단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생각보다 청와대 경내에 흙으로 이뤄진 지형들이 많이 있다.

와서 보니 중출맥을 따라 내려오는 곳은 대부분 흙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이는 굽이쳐 내려오는 용맥이

걸림돌(바위) 없이 순탄하게 내려왔다는 의미다” (매경LUXMEN 2022.6 )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당사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정반대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땅의 운명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모래벌판이던 잠실은 아파트 숲이 되고, 쓰레기 산 난지도 일대에 디지털미디어센터가 들어서고,

비만 오면 물이 차던 망원동은 청춘 핫 플레이스가 됐다.

교외 공동묘지 자리에 고급주택단지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경우도 많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큰돈을 번 이유가 드라마틱하다. 사업을 위해 중국과 홍콩을 드나들며

동양인들의 풍수 정서에 주목했다. 이를 거꾸로 이용해 부동산 개발에 나섰다.

버려진 강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초고층 아파트로 줄줄이 개발했다.

전망을 확보하려 땅의 지형을 바꾸는 일은 기본이었다.

 

땅의 팔자는 사람의 의지, 발전하는 기술, 자본의 논리가 결정한다.

일제 쇠말뚝을 박았건 말건, 청와대 터가 어떻건 그동안 한국은 셀 수 없는 인재가 나오고 G10 대열에 진입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청와대는 모두의 공간이 됐고, 용산은 또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청와대 경복궁 일대는 유동인구가 늘어 활기가 넘친다. 용산미군기지 반환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두 동네 모두 손실보다는 이익이 많다.

 

 

일직선 위에서 놓이게 된 이유

 

서울의 핵심 유산과 시설들은 왜 북한산과 관악산 사이 일직선상에 놓여있을까.

이는 역사가 말해준다. 백악산~관악산 축은 한양 건설 때 중심축이었다.

백악산 남쪽으로 경복궁 덕수궁 숭례문이 자리를 잡고 그 인근에 부대시설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도시구조가 크게 바뀐다.

한강이남에서 서울중심부로 들어오려면 관악산을 돌아서 들어와야 한다.

일제는 지형이 평탄한 관악산 서쪽으로 대로와 철도를 냈다. 안양~영등포~노량진~용산~서울역 노선이다.

관악산 동쪽 남태령이나 양재 쪽은 크고 작은 산들이 많다. 교통축을 따라 용산역, 서울역, 시청이 들어섰다.

용산은 오랜 기간 일본군과 미군이 주둔지였다. 덕분에 개발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서울 안에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갈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동작동 서울현충원은 1955년에 생겼지만 조선 때부터 풍수와 연관이 깊다.

현충원 묘역의 원조는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 묘역이다. 현충원이 들어서기 400여 년 전인 1550년에 생겼다.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말을 듣고 경기도 장흥에서 이장을 해왔다. 그 뒤 손자인 선조가 왕위에 올랐다.

후궁의 자손으로는 처음이다. 이후 조선의 임금은 모두 창빈의 후손이다.

이런 자리에 19557월 국군묘지가 들어섰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숨진 전사자들을 안장하는 자리였다.

일대가 조선 때부터 국가 소유였기에 조성이 쉬웠다.

1965년에는 국립묘지로 승격되며 군인 아닌 국가유공자들도 안장하게 됐다.

명당의 기를 받고자 했을까. 창빈 안씨 묘역 주위에 역대 대통령들이 묻혀있다.

뒤에 박정희, 옆에 김대중, 앞에 이승만, 건너편에 김영삼. 이제는 빈자리가 없다.

역사 속의 필연과 우연이 이들을 일직선 위에 올려놓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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