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음주(飮酒)

甘冥堂 2025. 1. 13. 10:59

기쁠 땐 술 마시지 말아야 하니
너무 즐거우면 실수가 많아지네
걱정스러울 땐 술 마시지 말아야 하니
취하고 나면 깊은 근심이 되네
아무 일 없는 때라야
술 마시기 좋으니
마음이 편안한 뒤에
술도 오래 즐길 수 있네
시원한 바람 북쪽 창에서 불어오고
밝은 달은 남쪽 창으로 슬며시 비추네
한가로운 흥취에 은자는 고무되어
술독 열어 새로 빚은 술 담아 오네
술잔 들어 홀로 마시니
어찌 친구가 꼭 필요하랴
얼근하게 기분 좋으면 그만이니
몇 잔을 마시는지는 따질 것 없네
피부는 술 때문에 매끈해지고
마음은 술 때문에 너그러워지네
질박하게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여유롭게 제 수명대로 살아야지
쩨쩨한 선비들 자질구레한 규범에 구애되어
침 흘리면서도 구미 당기지 않는 척하고
방탕한 자들 끝내 술독에 빠져
머리끝까지 흠뻑 취한 저 모습이란!
굴원도 아니고 순우곤도 아니니
이러한 이치 누가 이해하랴
 
- 박태보(朴泰輔, 1654~1689), 『정재집(定齋集)』
「유종원의 음주 시를 본떠 짓다[擬柳子厚飮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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