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詩 100

宮詞

甘冥堂 2018. 4. 5. 10:01

063.宮詞

宋徽宗趙佶

 

新樣梳妝巧畫眉 (신양소장교화미) 새롭게 머리 빚고 단장하며 눈썹 곱게 그리니

窄衣纖體最相宜 (착의직체최상의) 섬세한 몸에 좁은 옷이 가장 잘 어울리네.

一時趨向多情遠 (일시추향다정원) 한때 대세에 좇아가는 것 다정함과 멀어지니

小閣幽窗靜弈棋 (소각유창정혁기) 작은 누각 깊은 창가에서 조용히 바둑이나 두네.

 

 

註釋

: (좁을 착)

梳妝: (소장) 머리 빗고 단장함

趨向: (추향). 대세(大勢)에 쏠리어서 좇아 따라감

    

 

宋徽宗: (1082~ 1135)

  

조길(趙佶). 북송의 제8대 황제. 신종(神宗)의 아들이다. 소성(紹聖) 3(1096) 단왕(端王)에 봉해졌다.

원부(元符) 3(1100) 형인 제7대 황제 철종(哲宗)이 병사하자 즉위했다.

정치는 채경(蔡京) 등 총신(寵臣)들에게 떠맡기고, 자신은 태평 시대를 맞아 궁정과 정원 등을 조영(造營)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한편으로 문화재를 수집 보호하고 서화원(書畵院)을 설치해서 궁정서화가를 양성하여, 문화사상 선화 시대(宣和時代)라는 한 시기를 연출했다. 시문(詩文)과 서화에 뛰어났고, 특히 그림은 전문가의 경지에 달하여 풍류천자(風流天子)라는 칭호를 얻었다.

 

정화(政和) 5(1115) 북만주(北滿洲)에서 여진족(女眞族)이 요()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금나라를 세웠을 때,

동관(童貫)의 진언을 받아들여 금나라와 동맹하여 요나라를 협공하고, 국초(國初) 이래의 염원이던 연운십륙주(燕雲十六州)를 수복하려고

꾀했지만, 선화(宣和) 7(1125) 금나라 군사의 진입(進入)을 초래했다.

 

흠종(欽宗)에게 양위(讓位)하고 스스로 도군황제(道君皇帝)가 되어 책임을 모면하려고 했지만,

재차 침공한 금나라 군사에 의해 국도 개봉(開封)이 함락되고, 흠종 기타의 황족, 후비(后妃) 등과 함께 금나라 군대에 잡힘으로써

북송의 멸망을 가져왔다. 이것이 정강(靖康)의 변()이다.

 

북만주의 오국성(五國城, 黑龍江省 依蘭縣)의 배소(配所)에서 병사했다. 23년 동안 재위했고, 글씨를 잘 써 수금체(瘦金體)로 불렸다.

천자문권(千字文卷)이 전한다. 그림도 잘 그려 부용금관(芙蓉錦鸛)이 있다. 시사(詩詞)에도 능해 선화궁사(宣和宮詞)등이 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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