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에게/ 정호승
늙어가는 아버지를 용서하라
너는 봄이 오지 않아도 꽃으로 피어나지만
나는 봄이 와도 꽃으로 피어나지 않는다
봄이 가도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내 평생 꽃으로 피어나는 사람을 아름다워했으나
이제는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꽃처럼 열매 맺길 바라지 않는다
늙어간다고 사랑을 잃겠느냐 늙어간다고 사랑도 늙겠느냐
(정호승 시인의 시 '산수유' 전문)
인용한 시 '산수유'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시 '불빛'에서도 시인의 哀想이 여실히 드러난다.
"때때로 과거에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있다
처음엔 어두운 터널 끝에서 차차 밝아오다가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갑자기 확 밝아오는 불빛처럼
과거에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있다
특히 어두운 과거의 불행에 환하게 불이 켜져
온 언덕을 뒤덮은 복숭아꽃처럼 불행이 눈부실 때가 있다
봄밤의 거리에 내걸린 초파일 연등처럼
내 과거의 불행에 붉은 등불이 걸릴 때
그 등불에 눈물의 달빛이 반짝일 때
나는 밤의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인다."
(시 '불빛' 중에서)
정 시인은
지금까지 나는 시가 있었기에 살아올 수 있었다.
만일 시가 없었다면 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며
남아 있는 삶 동안 여전히 시의 눈으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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