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성삼문의 지조와 절개

甘冥堂 2024. 5. 13. 16:50

성삼문(成三問, 1418 ~1456년)은 단종(端宗) 복위를 추진하는데 앞장섰다가 발각돼
39세의 젊은 나이로 능지처참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성삼문은 집현전 학사로 선발되어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세종이 훈민정음 28글자를 만들 때,
成三問(성삼문)은 申叔舟(신숙주), 朴彭年(박팽년), 河緯地(하위지), 李塏(이개), 李石享(이석형) 등과 함께  
훈민정음을 제작하여 반포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皇甫仁(황보인),
金宗瑞(김종서)를 죽이고 정권을 잡은 후,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정난공신의 칭호를 내렸다.

성삼문은 이를 부끄럽게 여겨 거절하고, 선생과 朴彭年 (박팽년)이 주도하여,
문종과 단종의 처가 식구들이 중심이 되고,
河緯地(하위지), 李塏(이개), 柳誠源(유성원), 兪應孚(유응부) 등과 동조하여 단종복위 운동을 하였다.

시작은 연회에 수양대군의 우군역활을 하는 동조자를 먼저 제거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거사 동지라 믿었던,
金礩(김질)의 밀고로 거사가 탄로나서 모의자들이 모두 잡혔다.

이 거사 실패로 잡혀 고문을 받을 때, 세조가 성삼문을 취조하면서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묻는다.

그러자 성삼문은 이렇게 답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세조는 죽기를 각오한 성삼문의 굳은 의지를 알고 난 후,
성삼문을 직접 심문하였으나, 선생은 수양대군을 끝내 왕이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고 불렀다.

화가 난 수양대군이 소리쳤다.
"네가 나를 보고 나으리라고 하니, 그럼 내가 준 녹봉은 왜 받아 먹었느냐?”

그러자 성삼문이 답했다.
“상왕(단종)이 아직 살아계시는데 어찌 내가 나으리의 신하인가?
당신이 준 녹봉은 하나도 먹지 않았다. 믿지 못하겠거던 내 집을 수색해 보라."

세조가 관리를 시켜 집을 수색해 보니, 과연 수양대군이 임금으로 즉위한 첫 달부터 받은 녹봉부터
어느 달 받은 녹봉인지를 전부 기록해 그대로 보관해 두고 있었다.

이런 성삼문의 행동에 화가난 세조는 쇠를 불에 달궈 담금질로
선생의 다리를 지지고, 찌르고 또 팔을 지졌으나,
성삼문은 오히려 형리를 재촉했다.

“쇠가 식었구나, 다시 달구어 오라.”

국문을 마치고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면서 성삼문은 한 수의 시를 읊었다.

그 시가 바로 "臨死賦絶命詩" (임사부절명시)이다.

선생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뒤돌아보니, 어린 딸아이가 울면서 따라온다.

이를 본 선생은 “사내 아이는 다 죽게 되겠지만, 너만은 살겠구나” 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성삼문은 죄인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을 맞이 했음에도
끝까지 절개와 지조를 굽히지 않는 굳굳한 모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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