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이백의 삶

甘冥堂 2024. 9. 26. 18:49

중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이백.

고매한 이상과 원대한 정치포부, 이를 실천할 만한 탁월한 학문과 재질이 있음에도 현실에 의해 좌절되자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잊은 듯 홀연히 입선구도 한 이백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삶을 일상적 사유로부터 벗어나는 초월적 의지의 실현의 장으로 파악한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감지되지 않는 인간사회 질서의 상당부분이

인간을 속박하는 실체로 지적되고 있으며, 이로부터의 초월만이 진실한 자유라는 주제가 제시된다.
그의 시는 기교 면에서도 중국 시의 한 전기를 이루고 있다.

​□ 생애와 작품
술과 달 의 시인 이백, 그는 과연 천재 인가, 광인 인가? 이백은 중국 당나라 시인으로 두보와 함께 이두 로 일컬어진다.
이백은 시선 , 두보는 시성 , 왕유는 시불 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꿈에서 태백성을 보고 출산했기 때문에 자를 태백이라 했다.
조상들은 대대로 농서 성기에 살았으나 이백은 중앙아시아의 쇄엽에서 출생했다.
​이백은 당의 현종과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현종은 전반기(개원연대)에는

측천무후의 횡포로 어지러운 나라를 중흥하고 태평성대를 이룩한 현명한 군주였다.
그러나 후반기(천보연대)에는 정사를 명문 구귀족 출신인 이임보에게 넘기고 양귀비와의 사랑놀음에 빠졌다.
​이 시대에 바로 시선 이백과 시성 두보가 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경전 및 제자백가의 학설을 배우고,

호방한 성품을 지닌 그는 일찌기 검술을 닦았으며 도교에 심취하여 선계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또 어려서부터 시문에 천재성을 발휘한다.

​한편 26세 때 한 자루의 칼을 지닌 채 양친에게 하직하고 멀리 고향을 떠나 대장부의 뜻을 펴고자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재주를 떨쳐 임금을 보좌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겠다 는 정치를 포부를 펴고자

동정호를 거쳐 여산 금릉 양주 등 한바탕 각지를 돌고

안육에 와서는 재상을 지냈던 허어사의 손녀딸을 아내로 맞고 10년 정도 정착했다.

그후 산동에서 공소부 등 5명과 조래산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술과 시로 나날을 보냈는데,

이들을 죽계육일 이라 한다.
​그후 다시 10년간을 방랑하다가 절강에서 도사 오균을 알게 되었는데,
오균이 먼저 현종의 부름을 받았고 이백은 그의 천거로 42세 때 현종의 부름을 받는다.

​이백은 너무 기뻐 (남릉에서 애들과 이별하고 서울로 가노라 (남릉별아동입경))라는 시에서
양천대소하면서 문을 차고 나가노라.
이 장부가 아무렴 촌에 묻혀 살소냐? 라고 호기롭게 읊었다.
​현종은 그를 정중히 맞이했으나 한림이라는 높지 않은 벼슬을 주었다.

그는 자기의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자질, 그리고 고매한 이상을 가지고 나라에 공을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당의 궁중은 타락하고 부패했으며 음흉하고 간악한 소인배들이 가득했으므로

청명하고 방탕한 이백은 적응할 수가 없었다.

결국 3년간의 궁중생활에서 이상을 펴지 못하고 오직 구토와 비분만을 느끼며 폭음을 일삼았다.
마침내는 궁중에서의 전권자인 환관 고력사에게 술취한 이백이

자기의 신발을 벗기게 하는 물의를 일으키고 궁중을 떠난다.

이백은 한 말의 술에 백 편의 시를 짓고 장안거리 술집에 쓰러져 자며

천자가 불러도 배 타고 갈 생각 않고 자기는 주정뱅이 시선 이라고 자칭한다.
​그의 생에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관직생활은 이렇게 2,3년 만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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