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리쯔(荔枝,여지)

甘冥堂 2025. 1. 11. 12:44

리츠

 

過華淸宮絶句 / 杜牧

화청궁을 지나며

 

長安回望繡成堆 (장안회망수성퇴)  장안을 돌아보니 자수 놓은 듯 언덕 있고

山頂千門次第開 (산정천문차제개) 산꼭대기 일천 대문 차래로 열려간다

一騎紅塵妃子笑 (일기홍진비자소) 뽀얀 먼지 속 말 한 필에 양귀비 미소 짓는 걸

無人知是荔枝來 (무인지시여지래) 여지(리쯔)가 온 것이라 어느 누가 짐작하랴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과일의 하나로 리쯔(荔枝,여지)라는 게 있다.

빨갛고 울퉁불퉁한 껍질 속에 있는 하얀 과육의 맛이 일품인 아열대 과일로

중국에서는 광동 푸젠 등 남부지방에서 산출된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이 과일은 당현종의 애첩 양귀비가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매일 신선한 리쯔를 먹어야 만족했다 한다.

리쯔는 남방지역에서만 나는 과일이면서 하루 이틀만 지나도 신선도가 금방 떨어지기에

양귀비가 있는 서안까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수천 리를 릴레이식으로 말로 달려 바쳐야 했다.

수송 과정에서 수 없는 병사와 말이 더위와 피로에 쓰러지고 산적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런 기막힌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수송되어 오는 리쯔에 미소 지었던 양귀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정신 나간 당현종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당현종은 집권 초기에 요숭(姚崇송경(宋璟) 등의 명재상을 기용하여 공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당나라를 아시아지역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만든 이른바 개원의 치(開元之治)를 이룬 인물인데

어쩌다 양귀비(楊貴妃)와의 사랑에 빠져 저 모양이 되었던지 안타깝기만 하다.

하여 후대 시인들은 이러한 당현종과 양귀비의 행태를 풍자하는 시를 많이 남겼다.

 

그 중 당대 말기 시인으로서 당나라 시성(詩聖)인 두보(杜甫)에 필적한다 하여

소두보(小杜甫)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두목(杜牧, 803852)

"화청궁을 지나며(過華淸宮)" 라는 7언절구는 풍자의 힘과 멋을 알게 해 주는 명시중의 명시다.

 

화청궁은 장안(長安, 지금의 陕西省 西安) 동쪽 의 여산(驪山) 기슭에 있는 행궁으로

당현종과 양귀비는 매년 10월 이곳으로 와 온천을 하였다.

이 시는 두목(杜牧)이 화청궁을 지나 장안으로 가는 여정에 당현종과 양귀비의 옛 일을 떠 올리며 지은 것이라 한다.

 

리쯔를 실어 나르는 말들이 붉은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장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매일 그런 장면을 보며 '오늘도 조정에 무슨 중대한 일이 있을 거야'라고 짐작할 뿐인 순진무구한 백성들의 모습,

그리고 달려오는 말을 보면서 운송과정에서 희생당한 병사들에 대한 미안함은 눈꼽만큼도 없이

'아 오늘도 맛있는 리쯔가 드디어 도착했구나' 라고 입가에 미소 짓는

양귀비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게 하는 묘사성과 상징성 뛰어난 시다.

한 번 읽어 감상해 보자. (블로그:중국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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