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 7

학철부어(涸轍鮒魚)

수레바퀴 웅덩이에 붕어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사상가 장자(莊子)가 생활이 궁핍해지자 위나라 군주 감하후(위문후)를 찾아가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했습니다.그러자 감하후는 '얼마 후 봉토에서 수확물이 올라오면 금 삼백을 빌려주겠소'라고 했습니다.당장 생활이 급한 처지의 장자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어제 길을 가는데 누가 다급한 목소리로저를 부르기에 주위를 살펴보니 수레바퀴가 지나가 움푹 팬 자리에빗물이 고여서 생긴 아주 작은 웅덩이에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그 붕어가 자기 신세가 다급하니 물 한 바가지만 떠 달라고 통사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붕어에게 며칠만 기다리면 내가 강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그러자 붕어가 크게 화를 내며지금 목을 축일 물 한 되만 있으면 되는데 나중에 많은 물..

커피를 맛있게 해주는 책의 효능

나는 어려서부터 우유가 맞지 않았다. 마시기만 하면 배탈이 나는 통에 학교에서 나눠주는 우유도 못 먹었다. 그랬던 내가 카페라테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난 후부터였다. 노인 산티아고가 바다에 나가 큰 물고기와 전쟁을 치른 후 상처투성이로 돌아왔을 때, 소년 마놀린이 노인에게 가져다준 그 커피. 지쳐 쓰러진 노인의 피투성이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며 우유와 설탕 듬뿍 넣은 커피를 들고 달려가는 소년의 마음.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그 부드러운 커피 맛이 내 입안에 진하게 감돌았다. 바다 위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던 노인은 이미 나였으므로, 따끈한 그 커피도 내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카페라테를 마실 때마다 산티아고가 되었고, 유당불내증이 의심되던 체질 역시 어느샌가 바뀌..

하이쿠 시 쓰기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부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그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쓰오 바쇼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안의 시인을 깨우는 일이다.그리하여 그 시는 우리 안의 시인에 의해 재창조된다.그것이 시 읽기의 기..

하이 요로콘데

하이 요로콘데  [나리카와 아야의 시사일본어]   지난해 2024년 12월 31일에 방송된 NHK 송년 음악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서 콧치노 켄토의 ‘하이 요로콘데’라는 제목의 노래가 주목을 받았다. ‘하이 요로콘데’는 ‘네, 기꺼이’라는 뜻이다.   1970년대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유튜브 공식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는 1억 5000만. 연말 레코드 대상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2024년을 상징하는 일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가 인기를 끈 것은 가사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흔히 혼네와 다테마에를 잘 쓴다고 한다. 혼네는 속마음, 다테마에는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미소를 짓고 “네, 기꺼이”라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화를 내고 있거나 울고 있을 수도 있다.  ..

네팔의 독립 전략

1757년 플라시전투 승리로 프랑스 세력을 인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영국은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벵골을 거점 삼아 세력을 계속 넓혀가고 있었다.북쪽의 네팔 지방에서는 용맹한 산악민족 구르카족의 고르카왕국이계속 남진하며 영토를 확장하다가 북진하던 영국과 충돌했는데이것이 1814년 제1차 영-네팔전쟁이다. 고르카왕국을 대수롭지 않게 본 영국 동인도회사는 세포이가 주축인 군인 3,500명을 투입했는데무려 740명이 전사하고 영국 최고 지휘관조차 전사하는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듬해 영국은 대군 4만 명을 동원해 네팔군 1만여 명을 공격했는데이것이 제2차 영-네팔 전쟁이다.네팔은 결국 1816년 굴복해 수가울리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을 맺었다.조약의 핵심은 네팔이 동인도회사에 영토를 대폭 할양하고독자적 외교가 금지..

南軒松 / 李白

[ 남헌의 소나무 ]이백 『정언묘선』남헌의 외로운 소나무 한그루가지와 잎이 절로 빽빽이 덮였네.맑은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와밤이나 낮이나 늘 상큼하다네.음지에 오래된 이끼가 파랗게 돋아그 빛이 가을 안개를 푸르게 물들이네.어찌하면 하늘을 뚫고 자라나곧바로 수천 길을 뻗어 오르겠는가? [ 南軒松 ]李白南軒有孤松 남헌유고송柯葉自綿羃 가엽자면멱淸風無閒時 청풍무한시瀟灑終日夕 소쇄종일석陰生古苔綠 음생고태녹色染秋煙碧 색염추연벽何當凌雲霄 하당능운소直上數千尺 직상수천척남헌의 낙락장송을 에찬한 작품이다. 맑은 바람이 늘 불어오니 소나무는 밤낮으로 맑은 기운을 뿜는다. 고색창연한 이끼가 파랗게 끼어 있어 시원한 기운이 이는데, 푸른 솔잎으로 인하여 뿌연 안개조차 푸르게 보인다. 한여름에 이 시를 읽노라면 절로 시원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