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어떤 師弟之間.

甘冥堂 2012. 6. 8. 16:56

 

오늘 형님께서 메일을 보내셨네요.

아래는 메일의 전문입니다.

우리 원우님들도 함께 보시면 좋을 듯하여, 형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여기다 올립니다.

양해해 주실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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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바쁘신데 또 질문 드립니다.

해석이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 멋대로 해석해 보았으나 ,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맹자에서도 자주 나오는 爲有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為有 七言絕句 李商隱

 

為有雲屏無限嬌, 鳳城寒盡怕春宵。

無端嫁得金龜婿, 辜負香衾事早朝。

 

구름 병풍 만드니 무한히 아름다운데, 경성의 추위는 다하고 봄밤이 두렵다.

어찌해서 대가 집 서방에게 시집을 가게 되어, 향 이불 덮고 조회 보게 하는 허물을 짓나.

 

대강의 의미는 이런 게 아닌가요?

아름다운 병풍을 만들어 놓으니. 추운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는데, 따뜻한 봄밤에는 어찌될까 걱정이 된다.

어찌어찌하여 금 거북을 차고 다니는 명문 댁 서방에게 시집을 갔으나, 그 서방이 조회에도 안 나가고 이불속에만 있으려 한다네.

 

為有: 억지로 만들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다. 하고나니 후회가 된다. 그런 뜻인가요?

 

辜:(고) 허물. 죄. 오로지하다. 막다. 반드시.

宵:(소)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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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해석을 해보겠습니다.


爲有雲屏無限嬌          운병을 지녔기 때문에 무한히 아름다웠으나

鳳城寒盡怕春宵          서울의 겨울이 끝나감에 봄 밤이 걱정된다.

無端嫁得金龜婿          생각하지 못했네. 시집가서 금귀대 차는 남편을 얻었더니

辜負香衾事早朝          향기로운 이불 저버리고 이른 조회에 참석하게 될 줄을.


하나씩 풀어보자면,

* 爲有는 그냥 '~을 소유하였기 때문에'라고 보시면 됩니다.

* 雲屏은 운모라는 보석으로 장식한 병풍입니다. 漢나라때 미인으로 유명한 조비연이 황후가 되자 그의 여동생인 趙昭儀조비연에게 운모병풍과 유리병풍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 자매는 모두 한 임금을 섬겼습니다.

* 鳳城은 서울을 가리킵니다.

* 無端은 여러가지 뜻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不料' 즉 '생각하지 못했다' 정도의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金龜는 당나라 때의 제도로서 관리들이 차고 다니던 일종의 자루입니다. 원래 당나라는 초기부터 오품 이상의 관리가 魚를 찼었는데, 측천무후 이래로 어대를 龜로 바꾸고, 삼품 이상의 관리는 금으로 장식한 금귀대, 4품은 은으로 장식한 은귀대, 5품은 구리로 장식한 동귀대를 차고 다녔다네요.

辜負는 하나의 단어처럼 쓰이고, 일반적으로는 '위배하다', 혹은 '저버리다' 정도의 의미로 풉니다.


해석상 주의해야 할 점은, 세 번째 구절의 無端이 네 번째 구절의 끝까지 걸린다는 점입니다. 이런 모습은 5언시에서 주로 나오는데, 두 구절 즉 열 글자를 한 번에 읽는다는 의미에서 '十字句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열 글자가 아니라 14글자 이지만.. 암튼 해석은 두 구절을 주욱 이어서 합니다.


해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혹시나 하여 시의 내용을 풀어보자면,


운모병풍 같은 진귀한 물건이 있어서 남편을 잘 유혹하였다. 그리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병풍이라는 물건이 겨울에 바람막이로 쓰는 것이라서, 이제 봄이 되면 병풍 쓸 일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남편을 유혹할 방법도 없어지니 참으로 걱정이다. 게다가 높은 지위의 남편에게 시집가서 좋을 줄만 알았더니, 이 놈의 서방이라는 작자는 새벽부터 조정의 조회에 참가한다고 날 버려두고 나가버린다..아우~ 동동다리,,, 아우~ 아롱다리...


시가 되게 재미있지요? 

약간 야하고, 또 약간 코믹하고,,

새색시의 뽀로퉁한 마음이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눌도 옛날에는 저랫던 것 같습니다.힝~


암튼 시의 내용이 약간 야하지만, 그게 천박함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읽는 사람이 빙그레 웃음짓도록 만듭니다. 마치 詩經에서 보이는 건강한 남녀의 사랑을 보는 듯합니다.

시경과의 연관성은 李商隱도 노렷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의 제목이 바로 첫 구절의 맨 앞글자이지요? 시경의 제목이 이런 방식으로 붙습니다. 그러니깐 이상은도 시경의 건강한 性을 염두에 두고서 이 시를 지었다고 볼 수 있지요.


흔히들 李商隱 하면 약간 변태비슷하게 생각하고들 합니다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재주 많은 사람이 당파싸움에 얽혀서 재주를 펴지 못하게 되자, 약간 이상하게 꼬였을 뿐입니다.

살다보면 누군들 삐딱하지 않을 때가 있겠습니까?...


아침부터 형님 덕에 재미있는 시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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