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 먹는 얘기

東 티벳을 가다

甘冥堂 2013. 8. 8. 17:14

噫吁嚱,                        헉.

危乎髙哉 !                   위험하고도 높구나!

蜀道之難,                    촉으로 가는 길 어려움이여.

難於上青天!                 청천에 오르는 것 보다 어렵구나!
上有六龍回日之髙標,    위로는 육룡이 해를 돌린다는 높은 산이 있고,

下有衝波逆折之回川.    아래로는 격랑이 역으로 꺾여 돌아가는 하천이 있다.

黄鶴之飛尚不得過,       날아다니는 황학도 아직 지나가지 못하고,

飛湍暴流爭喧豗,          날아 떨어지는 급한 물은 큰소리를 다투고,

砅崖轉石萬壑雷.          벼랑을 치고 돌을 굴려 골짜기에 뇌성이 친다.

其嶮也若此,                그 험하기 이와 같은데,

嗟爾逺道之人胡為乎來哉.    아, 그대는 먼 길을 무엇하러 왔는가?

側身西望長咨嗟.          몸을 기울여 서쪽을 바라보며 장탄식을 한다네.

 

이백의 촉도난(蜀道難)의 일부다.

촉은 옛날 중국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등이 세운 사천성 일대의 촉한을 이른다.

평소 중국인들의 과장을 그들 특유의 뻥 치는 정도로 치부했었는데, 실제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과연 그럴만도 하다. 

워낙 대륙이 크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7월25일부터 8월7일까지 중국 사천성 청뚜 일대를 다녀왔다.

지진, 홍수에 산사태 등 어수선한 소식을 안은 채, 그래도 계획했던 것이니 아니갈 수 없다.

 

청뚜에서 첫 목적지 磨西(모시)로 가는 길.

홍수와 산사태로 길가의 가드레일이 성한 것이 없고, 물이 흐르는 토사 절벽 밑을 지날 땐, 아찔한 생각마져 들 정도였다. 

이 험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을 왜 왔던가? 모험인가 무모함인가?

사전 정보도, 아무것도 모른체 그저 오지 여행쯤이려니 생각하고 온 것이 너무 위험한 상황과 맞닿트린 것이다.  

 

다음날 원래 계획인 해로구 풍경구는 수해로 인해 입장 자체가 금지되어, 인근 연자구로 대신했다.

 

공알산(공가산)의 속살.

 

모시에서 康定으로 가는 길에 홍석공원.

바위에 빨간 이끼가 끼어 붉은 돌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紅石灘을 넘어 칸딩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 雅加埂(야지아겅). 해발3,830m.

 

 

康定에서 금강사. 남무사. 포마산 등을 둘러보았다.

포마산 길상사.

砲馬山에서 케이불카를 타고 내려오면서 본 캉띵市 전경.

 

강희제가 증축했다는 南無社.

법당앞을 불경을 암송하며 걸어다니는 스님들.

나무 밑에, 혹은 처마 밑에 앉아 불경 공부에 여념이 없다.

 

木格措(무거츄오) 호수.

해발 3,700m 고지에 있는 호수.

 

 

 

塔公-장족마을

木格措호수를 보고 다시 칸띵시를 거쳐 塔公(따공)으로 향했다.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

간판도, 그 옆의 화장실도,  너무 인간적이다.

 

The longest night!

이 밤이 내게 있어 가장 긴 밤이었다.

어제 마신 술기운인지, 해발 3,700m의 고산증세 때문인지 골이 아파서 밤새도록 뒤척여야만 했다.

깜빡 잠이 든 중간에도 이상한 꿈에 시달렸다.

.. 나는 그 일을 끝냈다.

.. 나는 그 일을 해냈다.

무얼 어떻게 했다는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어떤 어간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밤새도록 꿈속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무슨 암시 같기도 하고... 골이 아파 저승 문턱에 까지 온 것일까? 무슨 이런 꿈이 다 있나?

 

塔公寺(타공사).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입장하지 못했다.

 

일망무제의 넓은 초원.

저 멀리 설산이 보이고.

 

멀리 보이는 야라설산.

 

타공에서의 괴로운 밤을 보내고, 고도가 낮은 丹巴(1,900m)마을로 내려오니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甲居藏寨(지야쥐장자이) 고산 마을과 中路마을.

 

甲居라는 말은 100 여 가구가 거주한다는 뜻. 샤오진하 협곡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끌려 들어간 가정집. 

이 집은 30여 명 정도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었다.

 

인심이 후한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위해 수요차를 만들어 주었다.

 

산 길에서 만난 장족 여인들.

산 나물을 캔듯.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건강하고 당당한 미인들이다.

기끼어 사진에 응해준다.

 구름은 여인이 되어 날아가고...

이어서 찾아간 小金河(샤오진하)협곡 반대편 쪽에 있는 중루. - 집집마다 망루가 있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한다고 한다.

 

 저녁 밥상. 채소 위주의 성찬이다.

마당에 한가로이 거니는 암탉을 몇 마리 요리해 줄 수 있느냐 청하니. 정중히 거절한다.

밥상 위에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보더니 손으로 가볍게 집어 담장에 올려놓는 주인 아저씨를 보면서, 그 손으로 닭을 잡으라는 것은 감히 요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침대.

장족의 생활의 멋이 그대로 풍긴다.

 

기념 사진.

순박한 미소가 푸근하다.

 

중루 마을의 아침.

 

丹巴에서 四姑娘山(쓰꾸냥산) 입구의 르롱(日隆) 마을로

 

멀리 四姑娘山(쓰꾸냥)산이 보인다. 5,000m가 넘는 4개의 봉우리. 4자매가 죽어서 산으로 태어났다고.

제일 높은 봉우리가 쓰구냥산이다.

강건체질은 걸어서 오르고...저질 체질(?)은 입구부터 말을 타고 大海子까지 오른다.

 

목적지 大海子.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린다.

이곳까지 올라와서 설산을 가까이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다시 이 말들을 타고 내려간다.

7시간을 넘게 말을 탔더니 엉덩이 뼈가 얼얼하다.

 

요사이 버섯이 제철이라고 한다.

송이버섯 1근(500g) 170元 (우리돈 33,000원 정도).

이 정도면 4근 정도된다.

 

르롱 마을.

오른쪽 앞은 우리가 묵은 호텔.

 

이제 쓰꾸냥산까지의 일정을 마치고 청뚜로 귀환하는 길.

 

해발 4,114m 의 夾金山.

무지개가 서렸다.

 

산이 다한 곳에 寶興(바오싱)이라는 도시.

금년 4월에 지진이 발생했던 곳이라고. 도시 전체가 아직도 복구작업 중이고. 어수선하다.

 

이 도시에 있는 홍군 기념관.

모택동 군대가 티벳 전사들과 함께 한 겨울 눈 쌓인 협금산을 넘어 이 도시에 진을 쳤다는 기록을 공원주위에 새겨 놓았다.

일종의 일기 비슷한 내용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이 마오 군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인 듯. 분위기가 자못 진지하다.

 

점심을 먹으며.

이 중 몇 가지나 먹어 보았나?

아는 것은 미쎈(쌀 국수), 미판(흰 밥) 뿐. 옆 사람이 먹는 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쩌거. 쩌거" 하는 것이 전부다.

 

여기까지가 공식일정이다.

다음날 찾아간 아미산. 그리고 낙산대불.

 

아미산을 오르는 길은 인파로 붐볐다.

마침 8월초 휴가철에 일요일이 겹쳐 더 지체되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오르는 데에만 3시간이 걸렸다.

 

아미산 정상의 불상.

중국에서 본 불상중에 제일 규모가 큰 것 같다.

 

다음날 樂山(여산)에서 하루를 묵고 찾아간 낙산대불.

凌云山(링윈산)에 조각된 세계 최대의 석불로 유네스코 새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강에서 배를 타고 그 전경을 한 번 둘러 보고, 이어 산으로 올라가서 머리에서 시작하여 발 끝까지 내려가면서 불상 전체를 보게 된다.

불상의 높이가 71m. 90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고.

 

허리 중간쯤에서 바라본 대불.

 

저 발 아래 중생들이...

 

낙산대불 경내에 있는 동파루. 宋代의 대 문호 蘇軾의 동상이 있다.

그는 문장뿐 아니라 서예도 대가 였다.

뒷면의 글은 구양수의 豊樂亭記(풍락정기). 이를 소식이 썼다.

 

전설에 소식이 이곳에서 龍의 자식들을 가르쳤다고.

 

아미산과 낙산대불의 관광을 끝내고 다시 청뚜로.

청뚜의 무후사와 두보초당을 둘러보았다. 

 

무후사. 유비와 제갈공명을 모신 곳. 

유비와 제갈공명을 한 곳에 모셨다. 임금과 신하를 한 곳에 모신 것이다.

신하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겠지만 황제로서는 어떨까?

소열전. 무후사. 혜릉이 이곳에 있다.

 

유비의 묘. 혜릉.

 

삼국지의 첫 머리는 위와 같이 시작된다.

 

滾滾長江東逝水   (곤곤장강동서수)                         굼실굼실 흘러서 동으로 가는 긴 강물.

浪花淘盡英雄是非成敗.(낭화도진영웅시비성패)      낭화 물거품이 영웅들의 시비성패 다 씻어가 버렸네.           

轉頭空               (전두공)                                     머리를 들어 돌이켜보니 어허 모두 다 空이로다.

靑山依舊在         (청산의구재)                               푸른 산은 예와 같이 의연히 있네.

幾度夕陽紅         (기도석양홍)                               몇 번이나 석양볕이 붉었다가 꺼졋더냐.

白髮漁樵江渚上   (백발어초강저상)                         백발이 성성한 어부와 초부한이 가을달

慣看秋月春風      (관간추월춘풍)                            봄바람을 언제나 바라보며,

一壺濁酒喜相逢   (일호탁주희상봉)                         한 병 막걸리로 기뿔싸 서로 만나.

古今多少事         (고금다소사)                               고금의 허다한 일 

都付笑談中         (도부소담중)                               소담 속에 부쳐보네.

                                                                                              

두보초당.

흔히 일러 杜甫를 詩聖이라 한다. 李白을 詩仙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이백, 두보는 唐詩의 대표적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침울비장하다고 평가 받는다.

평생을 변변한 벼슬살이 한 번 못해보고 객지로 떠돌다 동정호 뱃전에서 59세의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생애 중 이곳 청뚜에서의 3년여의 생활이 가장 안정적이었고 이곳에서 240여 首의 시를 썼다.

 

두보 초당.

 

두보 초당에 있는 두보의 유명한 시.

 

초가집이 가을 바람에 무너진 노래 / 두보

 

팔월달 한 가을에 바람 사납게 불어.

우리 집 지붕의 세 겹 이엉을 말아 올렸네.

(중략)

아아! 언제면 눈앞에 우뚝히 솟은 그런 집이 나타날까?

내 움막만이 홀로 무너져 얼어 죽게 된다 하더라고 만족하리라.

 

두보의 인간애가 그대로 잘 드러난 시다. 자기보다 못한 천하의 빈한한 사람들을 위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으로 청뚜, 동티벳의 여행기를 마친다.

처음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공식 일정에서 이틀을 더 추가 하였음에도 귀국할 때가 될수록 아쉽기만 하였다.

고풍스런 문화공원. 그리고 그곳 수펑야윈(蜀風雅韵)에서의 川劇(쓰촨 오페라)도 볼 만 하였다.

유명하다는 마파두부, 단단면은 결국은 먹어보지도 못했다.

청두에서의 미진한 것들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청뚜 출발 비행기의 지연으로 인해, 칭따오 공항에서 환승 비행편을 놓치고야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사의 배려로 일등석을 배정 받았다.

공항 귀빈실에서, 또 기내 일등실에서 여 승무원들의 극진한 대우를 받은 것이 이번 여행의 大尾를 매우 품위(?)있게 만들어 주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칭따오에서 인천 까지의 한 시간은 왜 이리 짧은가?  한 이틀 정도 날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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