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Belorado 벨로라도

甘冥堂 2018. 8. 31. 21:14

 

 

 

 

 

 

 

 

걷기 11일째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아침 기온이 10도 안팍이다.

 

새벽부터 길을 잃어 1시간이나 헤맸다.

이태리 친구와 동행했으나 서로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 모두 내 탓인 걸 뭐.

공식적으로는 23km다.

 

배낭 짐을 과감하게 줄였다.

내의. 등산양말. 목에 두르는 수건. 긴팔 겉옷.

스텐레스 컵. 샌달. 파리에서 구입한 간편배낭, 해충 제거 스프레이. 각종 비닐봉투...

 

날씨도 싸늘해지는데, 또 필요할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과감하게 버렸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되지 뭐.

배낭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픈 무릎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ㅎ

 

밀 수확이 끝난 드넓은 대지에 해바라기가 만개했다. 순례객들이 꽃에 낙서(?)를 했다.

 

El Corro 공립 알베르게 벤치에 누군가 한글로 한 구절을 써 놓았다. '사랑은 주는 것'

우리 한글을 이 먼 오지에서 보다니...

 

받는 것에만 익숙한 우리도 이젠 베풀 때가 되지 않았나? '입은 닫고 지갑은 열고'

지혜롭게 사는 방법 제1조라고 하는데, 천성이 알뜰한 이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바람에 삭아버린 바위산 아래 성당이 있다.

이 성당 앞을 까미노 길이 통과한다.

폐허같은 마을이 오로지 순례객들에 의지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성자가 한 번 걸어가니 젖과 꿀이 따라간 것이다.

알지 못하겠다.

 

오후 6시.

성당에서 축제가 열렸다.

밴드가 동원되고 무용하는 청년들, 성상을 옮기는 행렬.

그 뒤에 신부님들이, 맨 나중에 악대가 따른다.

조그만 시골동네에선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성당에서 출발한 행렬이 온 동네 구석구석을 돈다.

여행객이 이런 축제를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축제로 인해 슈퍼마켓이 영업을 하지 않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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