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Ages 아게스

甘冥堂 2018. 9. 1. 23:09

 

 

 

걷기 12일째. 27km

 

내일을 위해 4km정도를 더 걸었다. 사람의 욕심이란 다 그런 거다.

내일 좀 덜 걸어 편하겠다고 오늘 몸을 혹사하다니...어리석다.

 

너무 지친다.

 

70리 산길 자갈길을 걸은 후

찬물로 땀을 씻고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하늘을 바라본다.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는 김성탄이나 다산만 외치는 게 아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천장을 올려다보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렇더라도

세월은 어쩔 수 없다.

 

桐花萬里丹山路,

단산의 만리 길엔 오동나무 꽃이 화창한데

雛鳳淸于老鳳聲

어린 봉황이 늙은 봉황 보다 청아한 소리를 내는구나.

 

만 리 까미노 길에 해바라기 만발한데

젊은 청마가 늙은 노새를 바람같이 앞서는구나. ㅎ.

사람의 힘으론 막을 수 없다.

 

프랑스 젊은 처녀가 나를 볼 때마다 두 손을 합장하고 공손하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무심했으나, 생각해보니 나를 동양의 승려로 여기는 것같았다.

 

허기야 목탁만 안 들었지, 짧은 머리에 턱주가리에 흰수염,

몸빼바지 헐렁하니 스님으로 오해 받을만도 하다.

다음에 여행할 때는 이들을 위해 반야심경이라도 외워 둬야겠다.

 

얼마나 걸었나 만보계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서양 아줌마가 자기 것도 보여주며 말을 건다.

나는 4만보 정도인데 그녀는 3만6천보였다.

같은 거리를 걸었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지?

그녀가 해석했다.

"나는 길고 당신은 짧잖아요!"

"?"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자,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황급히 자리를 뜬다.

어떻게 알았지?

어떨결에 비유적 표현이 된 것이었다.

 

서쪽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태양을 등지고 간다.

앞장 서 걸어가는 길다란 그림자의 길이가 발밑을 맴돌 무렵이면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만났던 맨발도사가 같이 동행하자고 연락이 왔으나,

내가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 어쩌나?

무릎이 아프다니까 도와주려는 것인데 어쩔 수 없다.

마음만이라도 고맙지 뭐.

 

오래되어 폐허같은 시골마을. 낡은 성당. 그옆의 알베르게 2곳. Ages 마을이다.

너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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