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竹枝詞(죽지사) - 劉禹錫(유우석)

甘冥堂 2023. 2. 7. 11:35

竹枝詞(죽지사) - 劉禹錫(유우석)

 

1. 전죽지사(前竹枝詞) 구수(九首) 其一(기일)

 

白帝城頭春草生 (백제성두춘초생) 백제성 머리에는 봄풀은 자라나고,

白鹽山下蜀江清 (백염산하촉강청) 백염산 아래에 촉강은 맑구나.

南人上來歌一曲 (남인상래가일곡) 남쪽 사람들 올라 와서 노래 한 곡조 부르는데

北人莫上動鄕情 (북인막상동향정) 북쪽 사람들 물길 오르지 마시라 고향생각 동하리니

 

 

류우석의 다른 죽지사

  <竹枝詞 9首 中 其1>

 

楊柳靑靑江水平 버들은 새파랗고 강물은 잔잔한데

聞郞江上唱歌聲 강에서 부르는 님의 노래 들리네

東邊日出西邊雨 동쪽 강변에 해가 뜨고 서쪽 강변엔 비 오니

道是無晴却有晴 흐리다고 해야 할지 맑다고 해야 할지

 

강변의 푸른 버드나무 가지는 아래로 숙이고, 강물 위 파도는 일어나지 않아

평평하고 조용한 것이 거울 같은데

아가씨는 강물위에서 들려오는 정 가득한 낭군의 노랫소리 듣는다.

이 사람은 그날 날씨와 같아, 동쪽에서 태양이 뜨는데

서쪽에서는 오히려 우울한 비가 내려 맑은 날이라 할 수 없으나,

맑은 하늘이 있다면 청청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고,

오히려 맑다고 할 수 있으니 진정 그 모습이 일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竹枝詞 劉禹錫

<竹枝詞 9首 中 其2>

 

山桃紅花滿上頭 붉은 산복숭아 꽃 산 마루에 만발하고

蜀江春水拍山流 파촉巴蜀의 강물 산을 어루만지며 흐른다

花紅易衰如郎意 붉었다가 쉽게 떨어지는 꽃은 님의 마음

水流無限似儂愁 끝없이 흐르는 강물은 나의 시름일세

 

*: 칠박 *: : ,

 

  또 다른 해석

 

山桃紅花滿上頭 산에는 붉은 복사꽃이 산꼭대기까지 가득하고

蜀江春水拍山流 촉강에는 봄물이 산을 치며 흘러내리네.

花紅易衰如郞意 붉은 꽃은 사내의 마음처럼 쉽게 시들고

水流無限似儂愁 물은 나의 근심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네.

 

 

瞿塘嘈嘈十二灘 구당물은 촬촬 열두 굽이를 흘러내리고

此中道路古來難 이 중에 도로는 옛날 부터 험난했다네.

長恨人心不如水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 마음 물과 같지 않아

等閑平地起波瀾 평지라고 무시하며 파란을 일으키네.

*: 여울탄

 

山上層層桃李花 산위에는 층층히 복숭아 자두꽃 피고

雲間烟火是人家 구름사이 연기 피어오르니 인가가 있구나.

銀釧金釵來負水 운 팔찌 금 비녀 여인은 물을 길어 오고

長刀短笠去燒畬 긴칼 짧은 삿갓 쓴 사내는 화전밭을 일구러 가네.

*: 팔찌천 *: 새밭여

 

 

楊柳靑靑江水平 버드나무 푸르고 강물은 가득한데

聞郎江上唱歌聲 낭군이 강위에서 부르는 노래소리 들리네.

東邊日出西邊雨 동쪽 가에 해가 떳다 서쪽 가에 비가 내렸다 하니

道是無情還有情 도대체 무정일까 도리어 유정일까.

  *: 돌아올환, 돌선, 다시, , 도리어, 물러나다

 

 

竹枝詞 : 악부(樂府)의 일종

唐代 류우석이 기주자사로 있을 때 建平의 아녀자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채집하여

지은 것으로 竹枝, 竹枝曲, 竹枝歌라 함

죽지사 유래 :

 

()임금이 남방을 순수하다가 창오야(蒼梧野)에서 세상을 떠나자,

두 부인 아황(娥皇)여영(女英)이 대나무에 피눈물을 흘리며 서러워 하다가

마침내 상수(湘水)에 빠져 죽었다.

 

이 후 지역민들은 두 여인을 상수의 신()으로 받들어 상군(湘君) 혹은

상부인(湘夫人)이라고 일컫고,

이 지역 대나무에 그들의 피눈물 흔적을 상징하는 무늬가 있다고 하여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고 하였다.

 

당시의 동정호일대에 처량하고 원망 어린 노래가 생겨났다.

이 노래가 상부인의 사정을 기념하는 것이라 하여 죽지라고 명명했다.

이후 죽지는 파유지역일대에 널리 전파되어 이 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민가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죽지라는 민가를 죽지사라는 작품양식으로 재정비하여 문단에 부각시킨 사람은

당나라 때 유우석(劉禹錫)이다.

그는 기주자사(夔州刺使)로 좌천되어 있을 때에 건평(建平)지역 아녀(兒女)들이 돌아가며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이것을 채집하여 죽지사라는 새로운 노래가사를 지었다.

이 죽지사는 작자의 순수서정이 아니라 건평이란 특정지역의 민가와 민풍(民風)을 근거로

가창(歌唱)을 전제한 노랫말로 지어졌다.

 

개별 작품의 양식은 7언절구 이면서 전체가 9수의 연작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등,

대단히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었다.

후대의 많은 문인들이 유우석의 <죽지사>의 특징을 의미있게 주목하고,

자기의 시대와 지역에 알맞게 응용하여 새로운 죽지사를 창작하였고

마침내 문인들이 즐겨짓는 문학작품의 하나로 문단에 정착하게 되었다.

 

 

 

죽지사는 전통적으로 악부시의 일종으로 간주되어왔다.

곽무천(郭茂倩)<악부시집 樂府詩集> 근대곡사(近代曲詞)에 죽지사를 수록 하였다.

이제현(李齊賢)은 유우석의 <죽지사>를 모델로 <소악부(小樂府)>를 지었으며,

신광수(申光洙)<관서악부(關西樂府)>가 관서죽지사(關西竹枝詞)로 명명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죽지사에 엄격한 양식적 제약이 없다. 7언절구 연작형태가 보통이다.

그러나 장편 혹은 단시 형태로 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단순히 특정지역의

토속쇄사(土俗瑣事)를 읊은 작품까지 관습적으로 죽지사 라고 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죽지사는 고려 말부터 부분적으로 실험되었다.

이제현이 유우석의 <죽지사>를 근거로 <소악부>를 지었다.

성현(成俔)<죽지사> 10수를 지어 <허백당풍아록(虛白堂風雅錄)>에 수록하였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의 작품 속에서도 이런 종류의 작품이

간헐적으로 발견된다.

조선 후기에 와서 주로 소외된 지식인과 위항시인들이 죽지사 작품을 다수 창작함으로써

문학사의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부각되었다.

서얼출신 신유한(申維翰)은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에 보고 들은 풍물을 회고하여

<일동죽지사(日東竹枝詞)> 34수를 지었다.

역관 출신인 조수삼(趙秀三)<방여승략(方輿勝略)>을 보고 82개국의 풍물을 작품화하여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133수를 지었다.

 

김해에서 24년간의 유배생활을 한 이학규(李學逵)는 김해의 풍물과 토속을 읊은

<금관죽지사(金官竹枝詞)> 30수를 지었다.

개화파의 인물인 이유원(李裕元)은 청나라 때의 <직공도(職貢圖)>를 보고 30개국의 풍물을

작품화 하여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 30수를 지었다.

한말의 서리 출신인 최영년(崔永年)은 사화(史話)와 민간 풍물을 다양하게 작품화하여

560수에 달하는 장편의<해동죽지사(海東竹枝詞)>를 지었다.

 

조선후기에 본격적으로 대두한 죽지사는 중세적 보편주의 동요와

새로운 작품양식의 모색이란 조선 후기 문단의 커다란 변화의 흐름에 부응한 것이다.

한시의 소재를 민간의 토속쇄사에까지 확대시켜서 조선시 조선풍의

풍의 실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다.

 

<송영호 한문산문 중에서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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