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239. 河滿子 / 張祜

甘冥堂 2024. 7. 27. 09:19

239. 河滿子 / 張祜

하만자

 

故國三千里 (고국삼천리) 고향 땅은 삼천 리

深宫二十年 (심궁이십년) 깊은 궁궐에 20.

一聲河滿子 (일성하만자) <하만자> 한 곡조에

雙淚落君前 (쌍루락군전) 두 줄기 눈물이 임금님 앞에 떨어지네.

 

 

해설이 시 제목으로는 원래 2수가 있는데, 여기서는 첫 번째 글로, 궁녀의 한을 쓴 것이다.

제목에 <宮詞>로 된 것도 있다.

 

故國고향.

河滿子(하만자)악부곡. 백거이의 <聽歌六絶句> 5<河滿子>에 의하면

개원 중에 滄州歌手 하만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죄를 지어 刑罰이 진행됨에 임해서

이 노래로 죽음을 면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그 이름으로 곡을 붙였는데 곡조가 애원하고 슬프기 절절하였다.

 

그 곡은 舞曲(무곡)의 이름이 되었다. <杜陽雜編(두양잡편)>에 기재되어 있으며,

文宗 궁인 沈阿翹(심아교)가 황제를 위하여 <아만자>를 추었는데, 사설이 조화롭고 풍태가 있으며,

이끄는 것이 모두 거침이 없었다."고 했다.

 

장호는 또 <孟才子嘆>의 시가 있었는데, 서두에 당 武宗이 중병으로 임종을 앞두고,

총애하는 孟才人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으니, 맹재인이 생황 악기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請以此就縊(청이차취액: 청하오니 이것으로 바로 목을 맬 것(목맬 액)"이라고 했다.

, 첩이 일찍이 예가를 하였으니 원 하건데 위의 노래를 한 곡 부르면 그것으로 그 분한 것을 씻어낼 것이다"하였다.

이에 <河滿子> 한 곡을 부르고 기가 다해 서서 죽었다.

무종은 의원을 시켜 지켜보게 하였으나 의원이 말하기를 맥은 여전히 따뜻하나 장은 이미 끊어졌습니다."하였다.

장호가 그 사실을 듣고, <孟才子嘆> 시를 지었다.

 

이 시는 宮怨詩(궁원시). 첫 구에 궁녀가 집을 떠난 지 아득히 멀다는 것을 썼고,

2구에 궁에 들어온 지 여러 해 되었고. 3구에 슬프고 분한 게 극에 달했다는 것을 썼으며,

4구는 임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항의를 표시했다.

 

일반적인 궁원시는 궁녀들이 총애를 잃거나 혹은 임금을 모시지 못해서 고통스러운 것을 쓰거나 하는데,

이 시는 그런 속설에 반하여 임금 앞에서 원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썼다.

또 행복과 자유를 빼앗겨버린 여성의 본래 면목을 썼다. 이것은 소재가 독특하다.

시는 단지 "자 한 자의 동사를 사용하여 기타 전부를 명사로 조성하여, 인하여 드러나는 게 특히 간단하면서

개괄적이며 강렬하고 힘이 있다.

 

 

[작자] 장호 (842 ?~854 ?) 承吉. 南陽사람. 처음에는 소주에 살며 處士로 불리다가

이후 장안으로 옮겼다. 그를 아끼던 令狐楚가 적극 추천하였으나 元稹의 반대로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다.

만년에는 단양에 은거하며 산수를 유랑했다.

시명을 떨치며 白居易. 杜牧과 교유했으며 장호시집 10권에 시 468수가 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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