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群山에 雪滿하거든 홀로 우뚝하리라

甘冥堂 2025. 1. 6. 12:14

궁류시(宮柳詩) -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

 

宮柳靑靑花亂飛 (궁류청청화난비)  대궐 버들 푸르고 어지러이 꽃 날리니

滿城冠蓋媚春輝 (만성관개미춘휘)  성 가득 벼슬아치는 봄볕에 아양 떠네

朝家共賀昇平樂 (조가공하승평락)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하례하나

誰遣危言出布衣 (수견위언출포의)  뉘 시켜 포의 입에서 바른말 하게 했나

 

 

권필은 평소 절개가 높아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데다

또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를 싫어해서 평생 야인으로 살았으며,

권력에 빌붙어 행세하는 자들을 미워했다.

광해군 초 권세가인 이이첨이 그에게 교제를 청했으나 거절했고,

남의 집에서 마주치자 담을 뛰어넘어 피한 일도 있었다.

 

광해군의 비() 유씨 아우 유희분 등이 방종하고,

벼슬아치들이 외척에게 아양을 떤다고 비꼰 '궁류시(宮柳詩)'가 발각되어

친국을 받게 되고 사형을 받게 되었다.

재상 이항복 등이 광해군에게 여러 차례 눈물로 호소하여

겨우 죽음을 면하고 해남으로 귀양길에 올랐다.

이미 곤장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데다가

그의 벗들이 동대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전별주를 주니,

그것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시고는 44세를 일기로 죽었다고 전한다.

(또는 유배를 떠나기 위해 동대문 밖 촌사에 머물렀는데,

주인이 술을 대접하였더니 받아 마시고는 이튿날 죽어서

주인이 집 문짝을 떼어서 널을 만들었다고도 전한다.)

 

그는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죽기 사흘 전 평생 쓴 시를 보자기에 싸서 지인에게 주고 마지막 시를 썼다.

 

평생에 우스개 글귀 즐겨 지어서

떠들썩 온갖 입에 오르내렸네

시 주머니 닫고서 세상 마치리

공자님도 말 없고자 하셨거늘

 

같은 해에 태어난 그의 벗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교산 허균(1569~1618)

권필 시의 빼어난 기상을 이렇게 칭송했다.

 

"때때로 꺼내어 외우면 바람이 어금니와 볼 사이로 으시시 일어나

절로 정신이 멀리 높은 하늘에까지 솟아오름을 알지 못하겠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조'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권필은 시를 지어 풍자하기를 좋아했는데,

매번 한 편이 나오기만 하면 세인들이 떠들썩하게 외워 전하니

이로 말미암아 좋아하지 않는 이가 많아져

마침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들 한다."

 

이 몸이 되올진대 무엇이 될꼬 하니

곤륜산(崑崙山) 상상봉(上上峰)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군산(群山)에 설만(雪滿)하거든 홀로 우뚝하리라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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