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녹두 두 되, 그리고 일억 일만 삼천 번

甘冥堂 2011. 9. 25. 23:08

전라도 영암 땅에 최씨 부자가 살았습니다.

집이 워낙 부자이니 그의 부모도, 자기 자신도 무엇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배우면 뭘 해. 좀 똑똑한 놈 고용해서 쓰면되지.

세월이 흘러 그 최씨 부자가 죽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자식 또한 사십줄에 접어 들었으나 부모의 재산으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살았드랬습니다.

마침, 그 고을에 새로이 군수가 부임을 했습니다. 그 군수가 성질이 좀 고약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소위 요샛말로 깐죽대는 인사였습니다.

하루는 최씨 아들을 불러 놓고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최씨 아들이 너무 무식했던 것이

들통이 났습니다. 그 군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대 놓고 무안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나이 사십이 넘도록

그런것도 모르냐?

 

최씨 아들은 그날 집으로 돌아와 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훈장을 찾아 갔습니다. 글 좀 가르켜 주십시오.

 

서당 훈장은 첫날 중국의 三皇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최부자가 알 턱이 없었지요.

훈장이 학당에 모인 학동들 앞에서 그것도 모르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집에 돌아 온 최부자는 그후 사흘이나 학당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훈장이 궁금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최부자가 학당에 나타났습니다.  삼황에 대한 글을 외우겠다고 하면서 술술 외웠습니다. 학당 훈장이 깜짝 놀라 어찌 그리 외울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최부자가 설명합니다. 녹두를 갖다 놓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외울 때마다 녹두 한 알을 옮겨

놓기를 계속하며 외우고 또 외웠답니다. 그랬더니 두 되가 없어질 때 쯤해서 삼황을 외우게 되었다 했습니다. 콩알보다도 더 작은 녹두알. 그 녹두알 두되의 갯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훈장이 이번에는 五帝를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최부자가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이번에는 녹두 반 되쯤 옮기니 그것을 외울 수 있게 되었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하기를

3년만에 십팔사략을 마스터했고 그 후 5년만에 사서삼경을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52세에 초시에 급제하고 이후 더욱 더 매진하여 훌륭한 인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靑句永言(조선후기의 歌客 金天澤이 엮은 가사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선비의 이야기입니다.

조선 선조~숙종 때 김득신(金得信)은 어려서 천연두(마마)를 앓아 머리가 몹씨 둔했습니다.

서당에서 사략을 공부하면서 大文을 백번을 쓰고도 한 마디도 못하고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史記 1편 伯夷傳을 무려 1억1만3천번을 읽어, 이윽고 문장에 사통팔달이 되었습니다.

그가 공부하던 집을 억만재(億萬齋)라 스스로 작명하였으며, 416首가 실린 백곡집(栢谷集)을 남겼습니다.

 

"재주가 다른 이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 이루었다.

모든것은 힘쓰고 노력하는데 달려 있다." 라는 묘비명을 미리 써 놓고 공부하여

5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안풍군에 봉해졌습니다.

 

사람의 노력 앞에는 당할 수가 없습니다. 율곡 이이는 여덟살에 花石亭이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 천재이지만,  당시 나이로는 저승길 문 앞인 52세에 초시를 합격한 최부자와, 한편의 문장을 일억번 이상을 읽어 터득한 김득신과 같은 선비의 그 노력은 천재에 못지 않은 인간 승리 그 자체가 아니었겠습니까?

 

50세 초반의 교수가 환갑이 넘은 스승 앞에서, 요사이엔 책을 봐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어쩌고 했다가 큰 야단을 맞았답니다. 그 스승은 제자 교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답니다.

그 스승이 다니는 교회에 102세된 장로가 있는데 그 장로가 항상 그 스승에게 충고를 한답니다.

"선을 긋지마라."

 

한다 못한다, 된다 안 된다. 미리 맘속에 어떤 선을 긋지말고,

나이 들었다 한탄하지 말고 더욱 노력하라는 뜻이 겠지요.

102세된 노 장로는 지금도 글을 쓰며 해외 여행도 다니신답니다.

뭔가를 배우려는 열정이 있는 사람은, 우리같은 범인들이  넘볼 수 없는 내공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오늘 졸립고 하품나는 습작을 끝내며, 부족한 것은 나이 들어 머리가 둔해지는게 아니라 열정이 식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당장 녹두 두되를 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