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그리고 늦깍기 공부

水墨鷺圖(수묵노도) / 成三問

甘冥堂 2023. 11. 7. 10:31

水墨鷺圖 / 成三問

 

雪作衣裳玉作趾  (설작의상옥작지 )   눈으로 옷을 짓고 옥으로 다리 만들어

窺魚蘆渚幾多時  (규어노저기다시 )   늪가에서 고기를 엿본 지 오래 되었네

偶然飛過山陰縣  (우연비과산음현 )   우연히 하늘을 날아 산음현 지나다가

誤落羲之洗硯池  (오락희지세연지 )   실수로 왕희지 벼루 씻는 못에 빠졌네

 

성삼문 선조의 水墨鷺圖라는 한시 입니다.

화선지에 쓰고 水墨鷺圖 먹으로 그린 백로의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성삼문이 중국 사신으로 명()명나라 에 갔을 때에 그의 학문과 시의 수준이 이름 높다는 말을 듣고

()나라 황제(일설에는 어느 귀족이라고도 함)가 그의 재주를 시험해 볼 양으로

어전에 중국의 신비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내 보이며,

 

지금, 짐이 가진 두루마리에는 백로(白鷺흰학)의 그림이 그려져 있소.

이 백로(白鷺)를 두고 시()를 지어 보시오.

라고 하면서 백로(白鷺)의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시를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림을 보아야 감정이 나오고 시상이 떠오를 것인데 보지를 못하니 참 딱한 일이지요.

백로(白鷺)의 특징은 이름대로 몸 전체가 하얀 새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삼문(成三問)은 즉시 1행과 2행의 시를 아래와 같이 지었습니다.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눈으로 흰옷을 짓고 옥으로 된 다리를 가진 학이

蘆渚窺魚幾多時(노저규어기다시갈대숲에서 물고기를 엿보며 얼마나  기다렸던가?

 

, 우리도 같이 상상해 보고 나름대로 시를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백로(白鷺)는 몸 전체가 눈같이 흰 백색이고 다리는 황금색 옥의 다리를 갖인 새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하고 물고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성삼문도 우리와 같은 생각으로 이렇게 1행과 2행의 시를 지었습니다.

 

성삼문이 위의 두 구절을 짓자 황제는 그때야 벽에 그림 두루마리를 펼치는데,

놀랍게도 그림은 먹으로만 그린 묵화(墨畵)의 검은색 백로(白鷺),

아니 흑로(黑鷺) 였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비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시에는 눈으로 옷을 짓고 황금색 옥으로 다리를 ....”라고 하였는데,

이 그림은 흰 눈과 같이 백색의 의상도 아니며 황금 옥으로 된 백로의 다리도 아니니,

시와 그림이 틀린 것 아니요?

하며, 성삼문(成三問)을 트집 잡아 당황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삼문(成三問)은 의연한 자세로 말하기를

폐하, 외신(外臣)의 시가 다 완성되려면 아직도 두 구절이 남았는데 나머지 까지 채워 보겠습니다.

하고 다음과 같이 이었습니다.

 

偶然飛過山陰縣 (우연비과산음현우연히 날라 산음현을 지나다가

誤落羲之洗硯池 (오락희지세연지잘못으로 왕희지의 벼루 씻는 물에 떨어졌구나.

 

산음현(山陰縣)은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살던 고을입니다.

성삼문은 나머지 두 구절에서 백로(白鷺)는 원래 흰색 이였는데 왕희지 벼루 씻는 못에 빠져 먹물이 배어 검어졌다고

명나라 황제의 회롱에 대응한 것입니다.

 

벼루의 먹물 씻은 못은 칠흑(漆黑)같이 검습니다.

먹물의 못에 빠졌으니 백로인들 어찌 검지 않겠습니까

이 재치에 황제이하 모든 선비들이 놀라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성삼문의 기발한 상상력은 살아있는 학 한 마리를

왕희지가 벼루를 씻던 산음현 못에 빠져버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두루마리 그림 속의 학이 하늘을 날아올라 멀고 먼 산음현, 그것도 왕희지가 살던 아주 오래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벼루 씻던 못에 빠졌으니 대단한 비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설)

성삼문(成三問)이 외교업무로 명()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

()나라에는 익히 성삼문이 문장(文章)에 능한 인물임이 널리 소문나 있었다.

성삼문의 알현(謁見)을 받은 명나라 황제가 성삼문의 시() 재주를 시험하려고

두루마리 그림 하나를 준비하였다.

알현(謁見)-지체가 높고 존귀한 사람을 직접 찾아뵙는 일

 

그리고 성삼문에게 말하기를

여기에 백로(白鷺)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이것을 시()로 표현해 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림은 펴 보여 주지를 않고 엎어놓은 상태였다.

골탕 먹이려 작정한 것이다.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자 성삼문은 위의 두 줄을 지었다.

 

雪作衣裳玉作趾(설작의상옥작지하얀 눈으로 옷을 입고 옥()으로 발을 가졌네

窺魚蘆渚幾多時(규어노저기다시갈대 사이로 물고기를 엿본 것이 몇 시간이더뇨

 

그랬더니 황제가 그림을 펴서 벽에 걸었는데 거기에는 먹으로 그린 검은 백로가 그려져 있었다.

 

황제가 말하기를

()으로 옷을 지었다고 했으니 흰 색이고

()으로 발을 지었다고 했으니 분명 붉은색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은 검은색이니 시()와 그림이 맞지 않는 것이다.

황제는 시()의 내용이 그림과 다르지 않으냐고 트집을 잡았다.

 

이에 성삼문이 말하기를

() 한 수를 작성하려면 최소한 네줄(四行)은 써야 합니다.

이제 겨우 두 줄 썼으니 나머지 두 줄을 더 지어야지요

하면서 셋째 줄과 넷째 줄을 지어 완성하였다.

 

셋째 줄과 넷째 줄의 내용은

 

원래 이 백로(白鷺)는 이름과 같이 흰빛이었으나 중국 제일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가 사는 산음현(山陰縣)위를 날아가다가 날개가 아파

쉬어 가기 위해 내려앉은 곳이 왕희지가 글을 쓴 벼루를 씻는 연못에

떨어져 검게 되었다는 것이다.

 

偶然飛過山陰縣 (우연비과산음현우연히 산음현(山陰縣)을 지나다가

誤落羲之洗硯池 (오락희지세연지왕희지(王羲之) 벼루 씻던 못에 잘못 떨어졌구나.

 

이 기발한 성삼문의 재치에 명()나라 황제 이하 신하들이 크게 감탄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전하는 유명한 시()이다.

[출처] 수묵노도 - 성삼문|작성자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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