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석 당시삼백수

203. 隋宫 / 李商隱

甘冥堂 2024. 7. 24. 14:31

203. 隋宫 / 李商隱

수나라 궁궐

 

紫泉宫殿鎖烟霞 (자천궁전쇄연하) 자천 궁전은 안개와 노을에 덮여 있는데

欲取蕪城作帝家 (욕취무성작제가) 무성을 취하여 황제의 궁을 지으려 했다.

玉璽不緣歸日角 (옥새불연귀일각) 옥새가 이연에게 돌아가는 인연이 없었다면

錦帆應是到天涯 (금범응시도천애) 비단 돛은 응당 하늘 끝까지 갔으리라.

于今腐草無螢火 (우금부초무형화) 지금의 썩은 풀엔 반딧불 없고

終古垂楊有暮鴉 (종고수양유모아) 장구한 수양버들엔 언제나 저녁 까마귀 있네.

地下若逢陳後主 (지하약봉진후주) 지하에서 진 후주를 만나게 된다면

豈宜重問後庭花 (기의중문후정화). 어찌 다시 <후정화>로 문책할 수 있겠는가.

 

 

이 시는 당 선종 大中11(857)에 지은 것이다. 작자는 隋煬帝(수양제)의 고사를 읊은 것으로,

그가 안일과 쾌락을 탐하여 망국에 이르게 한 것을 풍자하였고 세상사 변천됨을 감개하였다.

 

紫泉(자천)司馬相如<上林賦>에 장안의 경승을 읊었는데, 거기에 丹水는 더 남쪽에.

紫淵徑(자연경)은 그 북쪽이란 말이 있는데 후에 紫淵을 빌어 장안을 가리켰다.

이곳을 당 고조 李淵(이연)의 이름을 피하여 紫泉이라고 고쳤다. 紫泉宫殿즉 수궁을 가리킨다.

蕪城(무성)즉 수나라 때의 江都. 옛날에는 광릉으로 불렸다. 劉宋時(유송시)鮑照(포조)는 광릉이 황폐하여

<蕪城賦>를 지었다. 이 때문에 이름을 얻게 되었다.

玉璽(옥새)황제의 옥도장.

 

日角(일각)옛날에 사람의 이마 골 중앙이 융기한 것이 날 자와 같아 日角이라 칭했으며, 황제의 상이라고 갖다 붙였다. 수나라 말에 晋陽人 唐儉(당검)이 이연에게 起兵할 것을 권하여, 그를 일러 日角龍庭"이라 하고, 천자라고 이름 지었다.

錦帆(금범)수양제가 남쪽으로 유람할 때의 龍舟(용주), 돛을 모두 비단으로 만들었다.

이 구와 윗 구절은 이연이 황제가 되지 않았다면, 수양제의 용주가 응당 하늘가 바다 끝으로 놀러 갔을 것이다.

 

腐草(부초)<禮記.月令>腐草爲螢(부초위형)”의 말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개똥벌레는 풀이 썩어 변하는 것으로

오인했다. 기재된 것에 의하면 양제는 일찍이 개똥벌레를 구하여 밤에 놀 때 방출하여, 산과 골짜기를 환하게 비췄다.

이 구는 현재 수궁이 황무지가 되어 반딧불이 다 없어져, 썩은 풀도 결코 개똥벌레로 화하지 않는다.

終古(종고)장구하다.

垂楊(수양)제방에 있는 버드나무를 가리킨다. 이 구는 장구하게 내려온 이래로 수나라 제방 위의 양버들 나무에

단지 저녁 까마귀만 시끄럽다. 이 두 구는 모두 수나라가 망해 엎어진 것을 감개하는 것이다.

豈宜(기의)어찌 합당하겠는가.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陳後主(진후주)왕조 황제 陳叔寶(진숙보)가 황음사치 하여 수나라에게 멸망당했다.

후세인들이 망국의 군주라 칭하였다.

 

<後庭花(후정화)>악부 <옥수후정화>는 진후주를 위하여 지은 것으로 후인들이 망국의 음악이라 칭했다.

<隨遺錄>에 기재되기를, 수양제가 江都에서 일찍이 밤에 진후주의 꿈을 꾸었는데, 의 총애하는 ,

張麗(장려)華舞<玉樹後庭花>를 청했다. 후주가 양제에게 묻기를 용주의 놀이는 즐거웠소?

전하의 정치가 요순의 이라 이르는데, 오늘 다시 이렇게 한가히 놀고 있으니 죄의 깊음을 어찌 보겠소?”

이 두 구절은, 수양제가 나라가 망하고 몸은 죽어, 지하에서 진후주를 다시 만난다면,

다시 좋은 뜻으로 장려의 화무<옥수후정화>를 청하겠는가?

 

 

해설이 시 또한 옛 것을 조문하는 영사시다. 내용은 비록 수궁을 노래하였으나 사실은 여전히

양제의 황음망국을 풍자하는 것이다.

수련은, 장안 궁전은 공허하게 연기와 노을 속에 잠겨있는데, 수양제는 오히려 오래 즐기기를 욕심내어,

江都를 황제의 궁으로 만들어 취하고자 한다.

함련은 江都가 황제의 궁으로 된 사실은 쓰지 않고, 가령 황제의 옥새가 唐高祖 李淵

수중에 닿지 않았다면, 수양제는 江都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으며, 용주는 아마

천하를 주유하였을 것이다.

 

경련에서는 煬帝의 두 가지 편안히 노니는 사실을 썼는데, 하나는 그가 일찍이 낙양 경화궁에서 반딧불을 널리 구하여

산에 놀러 나가 그것을 풀어, 바위 골짜기를 두루 빛냈다”, 江都放螢院(방형원)”을 세워 개똥벌레 날리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또 하나는 運河를 열어 민간에게 버들 한 주씩을 헌납하게 하여 상으로 비단 한 필을 주고,

뚝방에 버드나무를 널리 심었다.

 

작가는 교묘하게 于今無終古有를 이용하여, 반딧불은 當日有”, 저녁 까마귀는

昔日無를 암시하여 망국 후의 처량한 경치를 渲染하였다.

미련에서는 楊廣陳叔寶(진숙보)가 꿈에서 서로 만났다는 전고를 활용하여 假设反洁

(가설반결)의 말로 황음망국의 주제를 내 걸었다.

 

은 역사상 荒淫亡國(황음망국)으로 유명한 군주로, 그가 수나라에 항복한 후에 태자

楊廣(양광)은 매우 성숙하였다. 후에 양광이 江都를 유람할 때, 꿈에서 죽은 진숙보와 그의 총애하는 왕비 장려를 만나,

장려에게 한곡의 <옥수후정화>을 춤추어 줄 것을 청했다.

이 곡은 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궁정생활의 음탕함을 반영하는 것으로 후인들에게

亡國之音으로 배척당했다.

 

시인이 여기에서 그 뜻을 사용한 것은 양제가 진 후주의 전철을 밟아, 결과적으로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쓴 것이다.

시는 比興수법을 채용하여, 민첩하고 융통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색채가 선명하고 음절이 곱고 낭랑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