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 3

냄비받침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 이 책의 끝머리에雖不足藏之名山 (수부족장지명산)庶無使墁之醬瓿 (서무사만지장부)。'비록 이름난 산에 비밀스러이 소장될 거리는 되지 못하나 간장항아리 덮개와 같은 쓸모 없는 것으로는 돌려보내지 말기를 바랍니다.'임금에게 바치는 글에 감히 이런 불경스런 표현을 하다니.그 책을 지은 자부심이 얼마나 컸으면 '간장항아리 덮개' 운운 했을까?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나도 가끔 이 글을 원용한다.'부디 냄비받침으로 쓰지나 마시길...'자부심 때문이 아니라책을 쓴 노력이 허무하게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책을 마무리하면서 문득 떠오르기에 옮겨보았다.

어떤 작품의 끝맺음

자서전을 쓰고 있다는 분이 책의 제목을 무어라 할까 고심 중이었다.우스갯소리로 '냄비받침 '으로 하는 게 어떠냐 하니 맘에 드는 제목이라며 좋아한다.힘들게 책을 지어도 제대로 읽어 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랴.몇 페이지 읽다가 그냥 내던져 버리거나,'냄비받침'으로 쓰거나,아니면 그냥 책꽂이 깊숙한 곳에 처박힐 게 뻔하다.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인데,그런 속도 모르고 책의 제목으로 좋다 하니 어이가 없다.다른 제목으로 하나 더 추천해 달라기에 '屋漏痕(옥루흔)'은 어떠냐? 낡은 집에 물이 새어 벽을 타고 내릴 때물이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주름을 내며 마디를 이루고 흐르듯이運筆 (운필)하라는 서예 용어다.이런 용어가 자서전의 제목에 어울리겠냐마는허나 그분은 그것도 좋다고 한다.굳이 서예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