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詩 100

初入淮河

甘冥堂 2018. 4. 11. 18:34

084.初入淮河》(選一

楊萬里


처음으로 회하에 들어가다

 

船離洪澤岸頭沙 (선리홍택안두사) 배가 홍택호를 건너니 강 언덕은 모래밭

人到淮河意不佳 (인도회하의불가) 회하에 이르니 사람들 마음 즐겁지 않다.

何必桑乾方是遠 (하필상건방시원) 하필 상건하가 바야흐로 멀리서 흐르는가

中流以北卽天涯 (중류이상즉천애) 회하 중류 이북은 바로 하늘 끝 변방인데

 

 

註釋

淮河: 양자강으로 흘러드는 560km에 이르는 물줄기.

洪澤: 지금의 장쑤 省 旴眙縣(우이현) 북쪽에 있는 호수.

桑乾: 지금의 베이징 서쪽을 흐르는 永定河의 상류. 당시 의 수도는 베이징이었다.

'桑乾河'는 북쪽 끝이라는 이미지로 唐詩 등에 자주 나온다.

 

註解

淳熙16 (1189), 작자가 秘書監의 자격으로 나라 國使의 접대역을 맡게 되어,

그들을 영접하기 위하여 淮河에 출장했을 때의 작품.

4연작. 당시 南宋淮河 이북을 에게 내주었다.

 

 

楊萬里 (1124~ 1206)

자가 정수(廷秀), 호는 성재(誠齋)이다. 강서 길수(吉水. 현 강서성(江西省) 길안(吉安)) 사람으로,

27세 때 진사가 되어 비서감(秘書監), 보모각직학사(寶謨閣直學士) 등을 역임하였다.

()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며 몇 차례 상소를 통해 조정의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두문불출하고 15년 동안을 칩거하다가 울분으로 병을 얻어 죽었다.

 

그는 다산의 작가로 심덕잠(沈德潛)설시췌어(說詩萃語)에 의하면, 20,000여 수를 지었다고 하나

아깝게도 지금 전해지고 있는 것은 4,200여 수 뿐이다.

초기에는 강서시파의 시를 배웠으나, 이 파의 폐단을 자각하고 나중에

 "자연을 본받는다(師法自然)"는 나름대로의 작시법을 개척하여 독특한 시풍을 이룩하였는데,

그래서 세칭 '양성재체(楊誠齋體)'라고 하였다.

저작으로 성재집(誠齋集)이 전해온다. 초입회하(初入淮河)를 예로 든다.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다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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